호수, 바다, 산 그리고 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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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 은퇴를 결심한 친구와 함께 떠났던 3박 4일 속초

 

 

퇴사 이후 삶에 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최선의 해법 찾기는 유경험자와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친구가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부탁했습니다. 지역은 랜드마크, 로컬, 자연생태, 맛집이 있는 속초로 정하였습니다. 미래막막증, 자존감 바닥 증후군, 예민성 경쟁과다증, 분노조절 실종증에 걸린 퇴직 예정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코스는 서울~고성~속초~양양으로 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코스였습니다. 속초와 양양은 바다, 호수, 땅이 있어 다양하고 신선한 식자재가 많아 축복받은 땅이라 지금껏 어떤 식당에서도 실패를 겪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만나는 모든 이들이 모두 친절하였습니다.

 

 

카페

시간의 흐름은 언제나 다름을 전제로 합니다. 새로운 각오로 인생을 시작할 친구가 평소와 다른 오감을 체험할 수 있도록 길고 긴 해안선과 넓은 푸른 바다를 맨 먼저 보여주기로 하였습니다. 가진롱비치에 있는 카페에 방문했습니다. 못 보던 카페도 새로 생겨 반가웠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했기에 점심식사 후에 나른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9월의 늦더위는 시원한 커피를 부르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진한 에스프레소만한 것이 없습니다. 가진롱비치에서의 커피는 분위기 한 스푼, 감성 한 스푼이 더 들어갑니다.

 

 

국립산악박물관, 국립등산학교, 설악산자생식물원

환경문제, 기후변화, 친환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지도 친환경에 중점을 두고 선정했고, 강원도는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역의 숨겨진 매력을 체험하기 위해 국립산악박물관, 국립등산학교, 설악산자생식물원을 방문했습니다.

 

국립산악박물관 산책로

 

국립산악박물관과 국립등산학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문을 닫아서 아쉽게도 내부 관람을 못하였습니다(흥미로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다고 전해 들어서 방문했는데 몹시 아쉬웠습니다). 산책길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해봅니다. 건강을 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젊었을 때는 돈을 벌기 위해서 건강을 버리더니, 나중에는 그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버립니다. 그리고 걷기와 요가는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에게 좋은 건강 비책인 것 같습니다. 물론 건강한 모습의 외형을 잘 가꿔가는 것만큼 내면 역시 튼실하게 키워가야 합니다.

 

산에 오르는 것은 힘듭니다. 하지만 힘든 것을 잘 이겨내면 행복해집니다. 코로나 시대에 저 포함 주변 사람들 모두가 힘들어하지만, 잘 이겨내어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박물관 산책을 하면서 설악산 노루목 10동지 추모비를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을 잃은 산악인 가족의 슬픔에 공감하면서, 오늘도 위험을 무릅쓰고 산을 올라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산악인들을 떠올려봤습니다.

 

설악산자생식물원은 설악산의 자생 식물들을 모아 놓은 곳으로, 기존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은 자연친화적상태로 천연림과 야생화 단지를 조성했습니다. 수생식물원, 온실원, 미로원 등이 있으며, 산책하기 좋은 나무 그늘길로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족욕공원에서~자생식물원까지 2시간 코스로 이어지는 속초사잇길 9길을 걸어보려 했으나 일정이 지체되어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청초호

 

청초호

둘레 5km에 이르는 큰 규모로 도심과 자연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의 호수입니다. 엑스포타워, 요트 계류장, 형형색색변하는 청호동 다리와 더불어 반짝이는 속초 야경이 하이라이트입니다. 특히 저녁때 혼자 산책하기 좋습니다. “청년이든 노년이든 외롭지 않으면 또 무엇으로 사냐?”고 물었을 때, “저 골목 끝에 남몰래 좋은 카페 하나 알면 되지”라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는 “내년에 네팔에 있는 카페를 가자”고 말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별 위로가 되지 않고, 그런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숫자가 그냥 숫자가 아니라는 것은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이며, 매일 마주하는 거울 덕에 잘 깨닫고 있습니다. 커다란 모자이크 그림에서 호기심 한 조각을 채워나가면서 지겹지 않도록 생활하고, 그저 평범하게 안온하게 분수에 맞는 길을 찾아가며 자족하며 살아가자고 했고, 더 이상 자기 고집이나 아집에 상처받지 말고, 상대적 박탈감도 가급적 느끼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새로 시작될 라운드 혹은 회사에서도 치열한 업무시간을 끝낸 후, 최소한 저녁때만큼이라도 청초호처럼 주변 풍경을 모두 끌어안고, 물안개 모락모락 피우면서, 고요하고 잔잔하게 화내지 않고 흘러가자고 했습니다.

 

상도문 돌담마을

 

상도문 돌담마을

속초에서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예쁜 마을입니다. 속초8경 중 하나인 학무정과 송림쉼터의 솔숲, 속초도문농요전수관 등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어린 시절 고향을 생각나게 했던 미로처럼 펼쳐진 돌담길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상도문 돌담마을은 지자체와 청년 창작자들 중심의 여타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다르게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서 만들어진 예술마을이었습니다. 지역 특색을 살린 차별화된 프로그램(체험 등)을 사전 검색하지 않고 무작정 방문했었는데, 마을길 돌담에 올려진 작품들을 보면서 이곳은 일상이 곧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길을 걷다가 우연히 지하수를 파고 있는 차량을 봤는데, 지하수를 파는 메커니즘도 신기했습니다.

 

설악산

 

설악산 케이블카

해발 700m 정상인 권금성 구간을 왕복 운행하는 케이블카입니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권 씨와 김 씨 두 장수가 하룻밤에 성을 쌓았다는 권금성 정상에서 동해바다와 울산바위, 속초 시내를 조망하였습니다. 푸르름은 두 눈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머리를 정갈하게 하며, 가슴을 다듬어 주었습니다. 봄에는 진달래, 여름에는 신록,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으로 연중 어느 때나 설악산은 아름답습니다.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좋은 일을 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저녁식사

야경도 멋있었지만, 오징어순대와 물회 등 음식뿐만 아니라 식당의 회전목마와 카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상엔 참 맛있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돈을 좀 벌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나이 들면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지 못하고 맛도 덜 느낄 수밖에 없으니, 그나마 조금 젊을 때 여러 나라의 맛있는 음식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새삼 먹고 사는 일은 끼니마다 번거롭고 지루함과 동시에 기쁨과 위로라는 일상의 큰 행복이고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은 느리게 먹고, 풍경도 느리게 보는 것이 바람직한 여행법인 것 같습니다.

 

속초중앙시장

여행도시는 음식과 숙소가 받쳐주어야 합니다. 속초 3대 음식인 물회, 아바이순대, 닭강정 + 호박식혜가 모여 있는 속초중앙시장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입니다 (여행사에 몸담으면서 느꼈던 점 중에 하나는 여행지 인근 맛집 정보가 부족하거나 없다는 점입니다. 안내장(Map)에 여행지만 표기하지 말고, 반드시 맛집과 숙소가 함께 표기되어야 관광 편의성이 증대될 것 같습니다) 제철 과일과 채소, 지역 생필품, 갓 잡아 올린 해산물과 고기들까지 오밀조밀 모여있는 시장은 낯선 동네와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시장 풍경은 우리가 인생에서 발견·발굴해야 할 즐거움의 요소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청초호 야경

 

때론 바쁘고 고된 일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는 각자 다양하겠지만 짧은 여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주말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속초는 최고의 선택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요? 지나온 시간과 새로운 각오 속에서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여행, 행복한 기억과 함께 곧 돌아오리라 다짐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닐까요? 행복한 여행,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