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50+(뉴딜)인턴십 참여자 인터뷰 ⑧

50+공유고용전문인력 | 황민택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건강 검진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동네 병원에서는 그냥 일을 좀 줄이라고 했다. 계속 검사를 받던 중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것 같으니 바로 응급실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 막힌 혈관을 뚫어준 의사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달려온 삶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조심조심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2~3년에 한 번씩 심장은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계속 지금처럼 일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좀 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2019년 초, 3개월간 일할 사람을 찾는 동대문구청의 채용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도 식힐 겸, 미래를 구상할 시간도 벌 겸 선뜻 지원서를 냈다. 황민택 님(55)의 인생 항로가 서서히 방향을 틀기 시작한 순간이다. 몇 번의 근무 연장을 거쳐 1년의 시간을 구청에서 보냈다. 그는 올해 초 구청에서 퇴직한 후 5월부터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에서 50+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 인턴십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습니까.

올해 초까지 동대문구청 경제진흥과에서 제로페이 홍보 업무를 맡았습니다. 구청 일이 끝나고 나서 실업 급여를 신청하라고 안내문이 날아왔어요. 실업 급여를 신청하려면 서울시에 구직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하고 나니 또 연락이 오더라고요. 서울50+뉴딜인턴십이라는 사업이 있는데 참여해보겠냐고요.

 

- 구청 근무가 끝난 뒤에도 계속 일을 할 계획이었나 보네요.

그렇죠. 제가 원래 했던 일은 부동산 분양과 컨설팅 쪽 일이에요, 분양대행사도 직접 차려서 해보고 20년 이상 했어요. 그러다 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 이제는 금전적인 것보다는 나이 들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한 번 찾아보자 생각했죠. 공공기관 쪽으로 알아보다 동대문구청 일을 했고, 해보니까 괜찮다 싶었고요. 내가 또 해볼 만한 일이 많겠다 싶어 찾아보는 과정에서 인턴십까지 오게된 거죠.

 

그는 동대문구청에서 일하면서 사회적기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일이라도 건강하게 할 수 있고, 보람을 찾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이었다. 사회적기업에서는 이런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알아보고 경험을 쌓아서 직접 사회적기업을 창업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됐다. 인턴십 지원 과정에서 희망 근무처로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선택했다.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는 광진구에 기반을 둔 사회적경제 조직의 연합체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57개 회원사(2020년 9월 기준)가 있다. 분과를 나눠 회원사 사업을 지원하고, 회원사의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다지기 위해 광진구 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운영을 맡고 있다. 정보 제공 및 경영에 필요한 공유 공간 지원, 회원사 네트워크 운영기금 조성, 정부 지원 사업 참여 지원 등의 활동을 펼친다.

 

- 어떤 업무를 하고 있습니까.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가 운영하는 마을로라는 웹사이트가 있어요. 원래는 회원사뿐만 아니라 광진구 주민을 상대로도 정보를 제공하는 포털로 운영하려 했는데, 현재는 회원사 일부만 이용하는 실정이에요. 좀 더 많은 주민이 마을로를 이용하게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 소상공인이 참여하는 쇼핑몰도 운영하려고 하고 있죠. 마을 화폐도 도입하고요. 제가 하는 일은 마을로가 새로 출범하기 전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한 도면을 그리는 일이라고 할까요. 마을로에 들어갈 콘텐츠를 기획하고, 플랫폼 운영 시스템을 구상하고, 프레임을 짜고 있습니다. 마을로 플랫폼에서 사용할 마을 화폐 운영 정책을 수립하고. 결제 프로세스를 정립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 플랫폼 운영 시스템을 구상하고 프레임을 짠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감이 잘 안 옵니다.

어떤 목적으로 마을로라는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 것이며, 거기엔 어떤 기능이 들어가고, 어떤 콘텐츠가 들어갈지 정해야 하잖아요. 각 기능과 쇼핑몰을 어떻게 운영할지도 계획해야 하고요. 이용자가 쉽고 편하게 원하는 내용을 찾아 들어가는 과정을 그려서 회원사들에게 어떻게 커뮤니티 플랫폼을 구축할지 브리핑도 해야 하죠.

 

- 마을로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가 들어가나요.

지역 소식이나 회원사 소식, 광진구나 서울시가 추진하는 공익사업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고요. 주민의 커뮤니티 공간을 온라인에서 제공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민원을 받아서 구청이나 서울시에 전달하는 여론 광장도 운영하고요. 또, 마을 안에서 소비를 활성화하고, 경제공동체 강화를 위해서 쇼핑몰 운영에 비중을 두려 해요. 그래서 마을 화폐 도입도 준비하고 있는 거죠.

 

- 사이트 운영을 위한 웹 기획 일을 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내년 상반기 플랫폼 런칭을 목표로 온라인 사이트와 모바일 앱 기획 업무를 하는 겁니다.

 

- 원래 이런 일을 해보셨습니까.

전혀 안 해봤어요. 마을 화폐가 활용되는 쇼핑몰이 포털에 들어가다 보니, 제가 제로페이 관련 업무 경험이 있어서 같이 하게 됐던 건데요. 제가 플랫폼 개발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부분에 참여해 같이 하는 거죠. 부족한 것은 배우면서 팀원들과 같이 하고 있어요.

 

 

마을로를 새롭게 탈바꿈하는 업무는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 회원사인 코발트사회적협동조합이 맡아서 하고 있다. 그와 또 다른 50+인턴 동료 한 명이 마을로 프로젝트에 참여해 코발트사회적협동조합 직원들과 함께 일한다.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라 처음에는 두려움도 컸다. 함께 일하는 코발트사회적협동조합 직원들의 도움을 받고, 교육도 받으면서 조금씩 낯선 업무에 적응해갔다. 그는 일하면서 자기 개발에 시간을 할애하도록 배려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인턴십 참여자에게 추천한 교육 과정을 수강하고,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 회원사들이 주최하는 교육에 참여하기도 했다.

 

마케팅 기초부터 엑셀, 파워포인트 심화 활용법, 플랫폼 콘텐츠 구성에 필요한 디지털 마케팅과 각종 프로그램 활용법까지 실무 역량을 높일 기회였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도 원래 그래픽 관련 프로그램인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교육에 참석하려고 했다.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일의 방식 또한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 많다.

 

우리는 슬랙(Slack)과 어도비 엑스디(XD)라는 프로그램으로 업무를 공유하거든요. 공동으로 플랫폼 계획을 그리면서 참여할 수 있는 일을 체크해서 하고, 좋은 정보는 서로 슬랙에 올려서 24시간 주고받아요. 주 3회 오후 1시부터 서너 시간 정도 회의실에 모여서 업무 방향이나 보완할 점 등을 격렬하게 토의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각자 자기 업무를 할당받아서 슬랙이나 엑스디로 성과물을 공유하는 거죠. 주간이든 야간이든 서로 정보를 전달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접속해서 흔적을 남기고, 이런 과정으로 일하고 있죠.

 

줌(Zoom)을 활용해 화상 회의와 교육에도 참여했다. 인턴십 기간 온라인, 비대면 협업 툴을 처음 써보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이삼십 대 젊은 직원들과 수평적인 문화에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또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는 “미팅이 잦고, 만남도 잦다 보니 나이 개념은 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한다기보다는 동호회가 어떤 성과물을 만들기 위해 같이 공부하는 분위기예요. 제가 부족하면 과감하게 도와달라고 얘기할 수 있고, 자신들이 모르는 경험을 알려달라고 하면 제가 또 그분들께 얘기해주고, 서로 보완하는 거죠. 아무래도 제가 배우는 게 많겠지만, 제가 살아온 경험이 여기 일에 녹아들 수 있으면 그분들도 좋게 받아주고요. 모두 협업의 일원이기 때문에 누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거나 강요하는 체계가 아니에요. 각자 파트별로 일을 맡아서 하는 동시에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뤄야 하니까 회의하고 토론하면서 합의점을 찾죠. 나이, 직책을 떠나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가는 동료로서 일하고 있어요.

 

 

그는 서울50+(뉴딜)인턴십 중 50+공유고용 전문인력이라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공유고용은 한 명의 전문 인력이 여러 고용주에게 시간 단위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각 고용주가 해당 인력의 인건비를 분담하는 형태의 고용 모델이다. 50+공유고용 전문인력 사업 참여자는 인턴십 기간 복수의 활동처에서 일하거나, 추후 공유고용 형태로 일하는 데 필요한 네트워크와 역량을 축적한다.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는 공유고용 형태의 일자리를 경험하기에 적합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조직 자체의 성격이 회원사들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다양한 유형의 사업을 관찰하기에 용이하다. 황민택 님은 마을로 관련 업무 외에도 57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협약서를 갱신하고, 회원사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보 확인을 위해 직접 회원사를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또, 십여 곳의 회원사가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함께 광진구 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에 입주해 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회원사 간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접촉면이 넓을 수밖에 없다.

 

- 다른 회원사 직원분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은가요.

교류를 너무 많이 하죠(웃음). 안에 있다 보면 교육 준비 협조 요청이 많이 들어 와요. 회원사가 외부인 대상 강의를 하면 체온 측정 준비도 해야 하고, 방문자 체크도 해야 하죠. 교재도 비치해야 하고요. 회원사들 직원이 얼마 없다 보니 짬짬이 가서 도와주죠. 때론 외부에서 진행하는 강의에 가서 준비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주 업무를 하는 중에 시간 나는 대로 여기 입주한 회원사 일을 같이 하게 되는 거죠.

 

- 사회적경제 기업 창업에도 관심 있다고 하셨는데, 일하면서 인상적으로 본 회원사가 있습니까.

광진담쟁이협동조합과 해오름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곳은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남녀노소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게끔 해요. 이웃과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요. 그런 쪽도 괜찮다 싶었어요. 이웃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이요. 우리가 같이 즐겁게 사는 방법인 것 같아요.

 

- 이웃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자신이 아는 것을 이웃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같이 참여하게끔 해서 내 것을 같이 나누는 거죠.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하는 회원사도 있고, 50대 가장들이 참여하는 ‘더블 50+쿡’이라는 요리 교실도 있어요. 가족들을 위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요리를 공유 주방에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죠. 공예 제품을 함께 만든 다음 자기 집을 꾸미거나 도배, 방역, 수납 등의 주제로 진행되는 주민기술학교 프로그램도 있고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어떤 기업의 프로그램이 될 수 있는 거죠.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업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회원사 직원들, 그리고 50+인턴 동료들까지. 그는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어울려 일한다.

 

일하며 보낸 20여 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묻자 “너무 치열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국에 5만 개가 넘는 분양 대행사가 있는데, 그중 95% 이상이 현상 유지도 힘들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큰 수익을 올릴 때도 있었지만, 전쟁터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도 마음도 많이 소모해야 했다.

 

분양권을 따내기 위해서 경쟁이 치열한데, 그렇게 일을 시작한 다음 한 현장의 일이 끝나면 너무 허무한 거예요.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고요.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가 많죠. 거기서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졌어요. 병상에 누워서 생각한 거예요. 너무 경쟁하듯, 쫓기듯 사회생활을 하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내가 나를 위해서 살아야겠다고요. 남은 생에서는 어떻게 나를 위해 즐겁게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두 번째 삶의 여정을 시작했다. 동대문구청 일을 거쳐 50+인턴십에 참여했다.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라는 낯선 조직에 와서 낯선 업무를 맡았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정신없이 어울려 일하는 공간에서 5개월을 보냈다.

 

그는 50+인턴으로 보낸 시간을 “배움의 연속”이라고 표현했다.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을 덜컥 맡게 되어 두려움이 컸지만 얼마 안 가 “완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해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 모르는 것은 물어가며 배울 기회, 즐겁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현실로 만들 기회다.

 

황민택 님은 이후에도 학습과 탐색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계속 찾아볼 생각이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발전시켜갈 나름의 방안도 그리게 됐다. 얻을 게 있고,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름 사회생활을 30~40년 했는데, 내가 아직 모르는 분야도 많구나, 내가 아직 나이가 많은 게 아니구나, 배울 게 많구나, 할 일을 찾으면 많겠구나, 이런 자신감을 얻었다고 할까요. 긍정적인 자극을 받았다고 할 수 있죠. 배움의 희열이라는 걸, 진짜 학교 다닐 때도 못 느꼈던 배움의 희열을 느꼈어요.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것도 배울 수 있고, 배우면서 또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알게 됐죠. 어떻게 보면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너무 즐거운 거죠.

 

 

인터뷰 기획·진행 l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

50+공유고용 전문인력 사업 운영 l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

사진 l 김태은 

 

* 서울50+(뉴딜)인턴십 현장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참여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글의 내용이 모든 사업 참여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입장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50+(뉴딜)인턴십 

50+세대가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배우는 동시에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앙코르커리어를 개척할 기회를 제공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입니다. 서울50+인턴십(파트타임형)과 서울50+뉴딜인턴십(풀타임형)으로 나뉩니다. 2020년 8개 세부 사업별로 참여자를 모집해 300여 명의 50+인턴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1년 상반기에 새롭게 참여자를 모집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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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순서

① 시니어 톱 모델의 자영업 유람기 

② 초보 직업상담사의 영화 같은 실전 체험

③ 딩동댕 유치원 PD, 아이돌 세계에 뛰어들다

 ‘그냥 재밌어서’의 힘 

⑤ 오래된 골목에서 그리는 스마트한 미래

⑥ 주거 복지 현장의 부동산 전문가

너무너무 재밌는 동네 인턴 생활

⑧ "학교에서도 못 느낀 배움의 희열을 느꼈어요"(현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