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서울2019 박배일 감독전'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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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영화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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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여성,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소외되었지만 우리 사회를 평등한 사회로 이끄는 힘 있는 목소리를 기록하는 공동체인 <오지 필름>소속의 박배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박 감독의 2017년 作 인디영화 [소성리]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가 마련된 강당을 찾았다. 박재일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기록하고 있는 다큐멘터리감독이다.
장애인의 사랑과 이동권을 다룬 <내 사랑 제제>, 장애인의 사랑과 결혼을 다룬 <나비와 바다>, 밀양 송전탑 투쟁을 벌였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밀양전>. <밀양아리랑>에 이어 소성리 작은 마을의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들의 일상을 아름답게 다루다가 사드 배치가 결정되자 투사로 변해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소성리>. 이번 작품 <소성리>는 박 감독의 작품에서 보이는 시대를 기록한다는 소명의식이 특히 돋보인 영화이다.
영화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마을의 풀벌레 소리로 시작된다. 소성리의 소박한 촌부인 금연, 순분, 의선은 6.25 전후 소성리로 시집온 아낙들이다.
아침이 밝아오면 지저귀는 새소리가 화면을 채우고 밭을 갈고 모종을 심고 모내기를 하는 그들의 일상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소성리에도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어렵고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아온 그들만이 여전히 정직한 땅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다.
낯선 곳에서의 시집살이를 견디게 해주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소성리 8부녀회 회원인 그들은 성주에 사드가 배치된다는 소식에 소극적으로 반대시위에 참여한다.
그러나 사드 배치의 지점이 소성리라고 결정되자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의 한평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소성리를 지켜야만 하는 절대 명제가 된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의 비호 아래 미국기를 앞세운 사드가 들어오는 장면에서 그들은 한국전쟁 때 목격했던 북한군과 한국군의 대비되는 행동을 떠올린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시절이 다 지난 줄 알았는데 그들 앞에 또다시 그 일들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박 감독은 2000년대 대한민국의 고요한 산골 마을 소성리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평화로운 소성리의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땅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관객에게 느끼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마을주민들의 모습과 사드를 찬성하면서 진압군처럼 마을주민들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서북청년단의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는 문재인 정부에서 사드배치를 확정 짓고 사드가 배치되었음을 자막으로 알리면서 소성리를 짓밟고 들어오는 사드의 굉음이 극장 전체를 채우며 끝이 났다.
객석과 무대에 불이 켜지고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맨 앞에 앉아서 80여 분 내내 미동도 없이 집중하고 관람하던 정원근씨(66)의 첫 질문과 박보혜(56)의 마지막 질문까지 정리를 해보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40여 분이 지나서야 사드 이야기가 등장하는 시점의 배치는 감독이 어떤 의도로 그렇게 한 것인가?
*감독-소성리의 평화로움을 가감 없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질문-영화의 화면을 채우고 있는 색감이 매우 아름다워서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하면서 보았다.
우리 눈에는 익숙해서 안보이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의 아름다움, 한국 정서의 아름다움이 특히 와 닿았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무엇에 비중을 두고 찍었는가?
*감독-특히 다채로운 색감에 특히 비중을 두었다. 첫 촬영 때부터 색감을 풍요롭게 사용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자연의 녹색들과 어우러진 빨간 소쿠리,
보라색 슬리퍼도 아름답게 보인 반면 일제강점기부터 우리나라의 누군가에게 색깔을 입히면서 (빨갱이 이, 빨강=보수, 파랑=진보처럼) 살아온 세월 속에 할머니들의 악몽 신은 의도적으로 색을 입혔다.
*그렇다면 색채 다음으로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인가.
*감독-소리이다. 풀벌레 소리, 새소리, 흐르는 물소리, 헬리콥터 소리, 할머니들의 절박한 외침 소리, 강하게 압박하고 거칠게 행동하는 서북청년단의 구호 소리, 사드를 싣고 육중하게 진입하는 탱크 소리....
*경찰들이 시민행동가의 차 창문을 부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는 장면의 근접촬영을 하는 데 경찰의 방해가 없었는지?
*감독-당연히 방해가 있었지만, 그 시절에 활동하던 시민활동가들은 전부 휴대전화로 현장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그 장면은 시민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소성리 할머니들에 대한 정보는 알고 들어간 것인가.
*감독-사전에 충분한 정보 수집과 사전 인터뷰를 통해 어떤 대답이 나올 것인지까지 유추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준비가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기록해주어서 고맙다. 주최 측에서는 홍보를 더 많이 해서 이렇게 좋은 영화를 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감독-오늘 와준 관객들은 특히 감독의 의도를 잘 파악한 분들이어서 이 영화의 감독으로서 보람을 느끼고 매우 감사하다.
감독과의 대화가 끝나고도 관객들은 강당 밖에 서서 감독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어쩌면 독립군처럼 외로운 독립영화작업을 10년씩이나 지속해올 수 있던 원동력은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 감독의 의도를 읽어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완성하고도 상영을 할 수 없는 인디영화를 위해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마련한 매주 월요일 정기상영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영화인들에게도 관객에게도 선물이 되었다.
기회도, 선물도, 적극적으로 잡는 사람의 몫이다. 초여름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준비한 선물-인디영화제가 끝나기 전에 많은 이들이 한 아름 받아가기 바라면서 피아노 숲길을 걸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