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나 넘기 위해 고개 열 개를 먼저 넘는 일”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한 시대
성동50플러스센터 디지털금융 강사과정 운영 후 복지관으로 강사파견
애순 씨, 수남 씨, 경순 씨, 오복이 씨, 선례 씨, 춘옥 씨, 복례 씨, 옥순 씨, 광월 씨, 향주 씨까지…. 지난 9월 21일, 성수동에 위치한 성수종합사회복지관 이룸터에서는 배움이 한창이었다. 학생들은 아마도 은발일 머리들. 그네들은 머리칼을 대개 검게 염색했다. 뒤에서 바라본 이분들의 머리는 대개 다 뽀글뽀글 파마를 했다. 검은 브로콜리 머리들이 여기저기 피었다. 이들이 손에 쥔 것은 스마트폰. 지금 강의는 디지털금융 실전과정이다.
▲ 지난 9월 21일 성수종합복지관에서 열린 디지털금융교육 실전과정 ⓒ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디지털세상, 더 피할 수는 없어서
이제 모든 일들은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다루듯 하는 세상이 됐다. 스마트폰. 그게 얼마나 쉬운 일이냐고 말하지만, 복례 씨, 옥순 씨 살던 시절은 이렇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안 하고 싶다. 슬슬 나들이 가듯 길을 걸어가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은행의 그 푹신한 의자에 앉아있는 일은 수지맞는 일이다. 사람 구경도 하고, 꽂힌 잡지도 보고. ‘띵똥’ 하고 자신의 번호가 뜨면 자리에서 일아나 창구에 앉는 일. 이것저것 물어도 친절하게 대응해주는 아가씨와 대화하면서. 쉬운 일은 그런 일들이지.
하지만 이미 시대가 변해도 너무나 크게 변했다. 동네 골목에선 은행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게마다 식당마다 카페마다 키오스크라는 기계 앞에서 주문해야 한다. 눈앞의 택시엔 모두 사람이 탔고, 빈 택시는 내 옆의 젊은이에게로 가서 선다. 음식 배달도, 버스표를 사는 것도 죄다 이제 스마트폰으로 한단다. 그러니 배우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여기 나온 이유다.
이들이 지금 교육을 통해 넘어서려는 장벽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디지털 세상. 블랙미러(피씨나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 넘어 0과 1의 세계다. 통장과 도장을 가방에 넣고, 은행 문을 열고 들어가, 창구의 은행원을 만나 청구서를 내미는 일이 아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화면 위 글자들의 세계다. 세 개의 점과 꺽쇠 기호와 아이콘을 찾아 두툼한 손으로 눌러야 하는 일이다. 눈앞의 은행들을 두고 그 너머의 은행들과 접속하는 일, 매대의 물건이 아니라 그림을 보고 선택한 물건에 돈을 지불하는 일.
▲ 이 수업을 위해 성동50플러스센터와 복지관과 기업들이 함께 협력했다 ⓒ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노인 한 분 한 분을 위해 온 마을이 협력하다
오늘 이 ‘나이 든 학생들’ 앞에 선 선생님은 김영숙(70) 강사님. 앉아있는 이들과 또래다. 학생들 곁에서는 영숙 님의 동료 강사 이지원 님이 보조강사로 함께 하고 있다. 오늘의 수업은 쿠팡에서 물건을 하나 사보는 것. 그리고 CGV 영화관 티켓도 구입할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접속해 들어간 쿠팡 쇼핑몰에는 없는 것이 없다. 그런데 결제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먼저 쿠팡 앱을 핸드폰에 까는 일. 그러려면 앱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결제를 위해서는 회원 등록도 해야 하는데, 회원이 되려면 내 이메일 계정이 필요하단다. 이메일은 무엇이며 계정은 또 무엇인가? 내 계정 아이디는 알겠는데, 도저히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뿐인가? 결제하려면 카드를 또 등록해야 한단다. 카드를 등록하면 이거 바이러스 먹는 거 아니야? 불안하고 또 불안하다.
“모르면 안타깝고, 아는 사람은 답답하죠!”
산 하나를 넘는데, 넘어야 할 고개가 열 개쯤인 이 과정들. 강사와 보조강사님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일일이 짚어주며 수업이 진행된다. 지지부진한 수업이 되는 건, 이들이 서로 다른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이 생길 줄 모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런 과정인 줄 알기에 수업은 미리 차근히 준비됐었다. 성동50플러스센터에서는 시니어금융강사 양성과정을 운영했다. 신한카드와 피치마켓과 신용카드 사회공헌재단이 함께 돕고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세대를 가장 잘 이해하는 50대~60대의 중장년 세대를 디지털 금융 강사로 양성하는 것이 이들 협동 프로젝트의 목표. 지난 3월 17일부터 4월 14일까지 진행했던 이 프로그램은 15명이 수강해 14명이 수료를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이 내부적으로 금융디지털강사 커뮤니티를 유지하면서 공부해 이 중 10명이 다시 성동구의 각 복지관으로 가서 강의를 진행하는 시스템. 성수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이들 강사 중 둘이 입문-도약-실전의 과정으로 나누어 시니어들을 가르쳐 온 것이다.
▲ 시니어들이 서로를 가르친다. 배워서 남 주는 시스템이다. ⓒ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50플러스센터가 키운 중장년 강사들이 시니어에 노노(老老) 학습
입문 과정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기초를 배우고, 디지털 금융에 대한 용어를 학습했다. 도약 과정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디지털 금융에 대한 이해 과정이 들어있었다. 보이스피싱, 스미싱 같은 사기사례 예방교육도 필수. 차근차근 배워왔지만, 여전히 새로운 세계는 어렵다. 쉬는 시간. 하지만 한 사람도 화장실에 가거나 자리를 비우는 이들이 없다. 졸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도 없다. 쉬는 시간을 빌려 학생들 중 청일점인 이광길 선생에게 물었다. 그는 멀리 도선동에서 여기 성수동까지 왔다.
“어떠십니까? 배우기가 쉽지는 않으시죠?”
“어렵죠. 하지만 배워야죠. 하나씩 하나씩 하려고 그럽니다.”
이 어려운 과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체계적인 협력 시스템 말고 또 있다. 강사가 또래 시니어라는 사실. 강사 김영숙 님과도 인터뷰했다.
▲ 김영숙 강사는 성동50플러스센터에서 디지털금융강사 과정을 듣기 전에도 이미 강사였다. 배움엔 끝이 없다. ⓒ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그녀는 대략 25년여 전, 그러니까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시니어를 위한 인문학 강의를 해왔다. 집과 가까운 도봉구청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 요구되는 여러 과정을 두루두루 강의했다. 가르치면서 스스로 폭넓게 인문학적 소양이 쌓였다.
“한 10여 년 전쯤부터일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하는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게 무엇인가 알아보려고 시작했어요. 정보기술 관련한 쪽에 관심을 두다 보니, 제가 일해 왔던 것이랑 겹치는 것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글쓰기 과정이었어요. 제가 생활체육회에서 잡지 출판을 책임졌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저도 이제 여기까지 온 거죠.”
겨우 60쯤이면 한 생을 마감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이제 60부터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시대. 한 세대쯤을 더 살게 된 새싹들은, 새로운 기기 앞에서 열심을 내고 있다. 그 곁에 스스로를 도우려는 자들을 돕는 이들이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제는 “한 노인을 새로 키우기(가르치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 강의실 한 켠에 복지관 회원의 시가 붙어있다. 한글을 몰랐던 비밀. 이제는 디지털문맹도 벗어나야하는 시대다. ⓒ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iskarma@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