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1571년 3월 초하루 전날, 바로 생일날에 오래전부터 고등법원과 공적 책무의 속박에 염증을 느꼈던 미셀 드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2~1592.9)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탑 건물을 개조하여 그동안 모은 책들을 정리하여 서재 겸 집필 및 사색의 공간, 치타델레(Zitadelle)의 성주로 살아간다. 르네상스에 신분과 체력을 겸비하고 지적인 소양까지 갖춘 위마니스트(humaniste)에게 당시 유행했던 풍조를 따른 것이므로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마치 한국 사회의 트렌드 하나로 시골스러움에 위안을 얻고자 하는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의 데자뷔 같은 것인데 「에세(Les Essais)」의 저술가답게 벽면 곳곳에 라틴어 격언을 새겨넣었다. 그중 마지막 금언은 프랑스어로 적었다. ‘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
「에세」-3, 3장 <세 가지 사귐에 관하여>에서 몽테뉴는 자신의 서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 몽테뉴의 성채
“내 서재는 탑의 4층에 있다. 2층은 내 예배실이고 3층은 침실과 탈의실이 있는데 혼자 지내려 할 때는 이따금 거기에 눕기도 한다. … 내 생각에 제집 안에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곳, 자기에게 특별히 아첨하고 자기를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한 자는 비참하다.”
몽테뉴의 성체를 끄집어 든 데는 경제전문가 특강에서 연사가 귀띔한 농담 때문이었다.
11월 마지막 금요일 오후, 우리나라 선수들이 월드컵축구 개막전을 치른 다음 날인지라 강연장에 청중들이 얼마나 모일까 자못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경제전문가의 특강이라 할지라도 여의도도 잠실도 아닌 서울 동쪽, 거기에 증권사나 경제연구소도 아닌 ‘50플러스센터’라서 더욱 그랬다.
▲ 경제전문가 김영익 교수의 특강
기우(杞憂), 고대 중국의 기(杞)나라 사람처럼 혼자 하늘이 무너질까 봐 근심, 걱정하였다.
몽테뉴 역시 쉼 없이 지식을 추구했지만, 그가 금언으로 삼은 것은 “인간이 갖춰야 할 최고의 지식은 닥친 일을 좋게 보고, 나머지는 근심하지 않는 것이다.”였다.
B1 강당은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50+들이 좌석을 점했고 여기서도 아재들보다 여성 다수였다.
‘인생 후반기, 부자로 살아가는 법’이란 주제로 나선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별명이 ‘닥터 둠(doom, 파멸)’이다. 코스피 지수가 3,200선을 넘던 지난해 가을 그는 “내 생애 못 볼 폭락이 온다. 준비해야 한다”라고 반복해 경고했는데 1년 후 2,200 아래까지 떨어지며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다. 경제학이든 스포츠든 ‘감(感)’으로 짚는 시대는 지났다. 감 떨어지는 예측보다 축적된 통계,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설명은 신뢰가 간다.
“올해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시장이 큰 영향을 받았지만, 내년부터는 경기 침체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겁니다. 경기가 침체되고 물가가 오히려 하락하면 금리는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 침체 가능성에 집중한 투자 전략을 짜야 할 시점입니다.”
강의의 절반 이상이 현재를 기반으로 하는 설명이라서 어느 것 하나 시원함이 없이 답답했다. 그래서 청중들에게 질의 응답시간은 전문가의 ‘강적’답게 구체적이고 절박하며 통쾌하기까지 했는데 사적 견해임을 전제로 몇 소절을 담는다.
“2억의 여유자금의 투자처를 안내해달라” - “3(채권), 3(은행), 4(주식)”
“주식투자 유망업종을 추천해 달라” - “반도체, 2차전지, 조선”(조선업종의 설명이 특이했다)
“미국 투자주식의 전망에 대해” - “계란을 한곳에 담지 말라. 분산투자다”
이 질문에 대해 그는 이른바 ‘몰빵’하는 학생들에게 교과서처럼 분산투자를 권한다고 했다. 그러자 한 학생의 인상적 답변을 소개한다. “계란이 하나밖에 없는데 분산투자라니요?”
몽테뉴의 성채처럼 방이 여러 개라면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계란이 많아야 분산도 가능하지 달랑 하나뿐인 계란이라면 어쩔 셈인가? 답은 계란을 메추리알로 바꾸라는 조언이다.
▲ 계란은 죄가 없다
수출, 주식, 부동산, 금리, 경기 등 어느 것 하나 뜨는 것이 없기에 이른바 ‘복합침체기’에서 50+들의 포트폴리오는 더욱 불안하고 초조할 따름이다. 경제전문가나 노후설계가나 방법과 각개전술은 달라도 결론은 똑같았다.
“저성장, 저금리, 저출산의 시대에 답은 근로소득이다.”
‘나갈 사무실’과 ‘용돈’이란 알토란 같은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최후의 직(職)과 평생의 업(業)을 좌우명으로 삼으라는 다소 빤한 권생가(勸生歌)이다.
젊은 날의 한때는 북해(北海)에 살던 물고기 곤(鯤)을 꿈꾸기도 했으며 하루에 구만리(里)를 나는 대붕(大鵬)을 품어 봄직도 했다. 하지만 보라, 계란 하나에 달달한 행복을 꿈꾸는 삼식(三食)이라면 ‘닭’이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영양 덩어리 가금(家禽)인지!!!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