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50플러스 보람일자리 다문화학습지원단 활동 및 지원단 4년 차 이도원 선생님 인터뷰
▲ 다문화 학생들이 모두 모여서 ‘윷놀이’를 하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이필열 기자
고유의 나로 살아가는 인생 2막, 이타의 사랑과 함께한다
시간이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인생 1막의 여정은 이미 끝났다. 인생 1막에서는 고유의 나로 살지 못하고 집단속의 부분인 나로 살았다. 잘 짜인 조직과 맡겨진 일들,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한 시간들이었지만 아쉬움은 남아 있다. 항상 그렇듯 인생 1막은 짜 놓은 계획대로 호락호락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떠돌이처럼 국제 무역을 한다고 세계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거기서 얻은 것도 있었고 잃은 것도 있었다. 결코 짧지 않은 30여 년 가까운 시간을 물 건너 해외에서 보냈다.
한국에 돌아왔다. 인생 2막이 새롭게 열렸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빛처럼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졌다. 이번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진정한 나로 거듭나고 싶었다. 진정한 나의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깊이 생각해 봤다. 정답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소일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일도 있고, 1막에서 못했던 이타적인 이웃사랑의 일도 병행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1막에서 했던 일을 2막에서 찾는 것이 큰 욕심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4학년 다문화 학생들이 국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이필열 기자
해외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느꼈다. 한국 사회는 지원하는 일마다 거기에 적합한 자격을 요구하고 있었다. 해외 무역을 오래 했다고, 중국어를 잘한다고, 영어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거기에 따르는 자격을 요구했다. 결국은 내가 경험하고 체험했던 해외에서의 일들을 떠올렸다. 미국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미국문화를 익혔고, 가족과 함께 중국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중국문화를 익혔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는 8년간 공장을 운영하면서 동남아 문화도 알았다.
어느 날 문득 남이 아닌 내가 바로 해외에서 다문화의 인생을 살아온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유치원에 갓 입학했던 딸과 돌을 앞둔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같이 중국으로 들어갔던 시절이 떠올랐다. 중국 유치원에 다시 입학한 딸은 그곳 교육 시스템에 잘 적응을 못 했다. 유치원에서 주는 음식도, 점심 식사 후에 의무적으로 잠을 자야 하는 오침의 시간도,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언어 소통도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접을 붙인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지 않는 그런 모양이었다. 모든 게 좌충우돌, 우왕좌왕 혼란의 연속이었다.
▲ 전체 다문화 학생들이 미술 수업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이필열 기자
2020년 날씨도 추웠던 12월의 어느 날이라고 생각된다. 경기도의 어느 농장에서 일해온 30대 캄보디아 여성이 숙소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는 뉴스를 TV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추운 엄동설한에 비닐하우스가 노동자의 숙소로 제공되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어디 이게 동방예의지국에서 일어날 일인가! 나라도 나서서 다문화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실제로 해외에서 다문화의 생활을 해 온 나이기에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다문화인들의 감성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문화에 관련된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었다. 무엇이든 다문화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소망만 차고 넘쳤다.
2021년 초에 50플러스포털에서 ‘다문화학습지원단’의 교육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주저 없이 이 교육을 이수하고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에서 진행하는 ‘다문화학습지원단’에 지원했다. 여기에서도 자격 조건이 필요했다. 정교사 자격증이나 한국어 교원 자격증이 필수였다. 때마침 잊고 지냈던 대학 시절의 교생 실습을 떠올리고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렇게 2021년 나의 ‘다문화학습지원단’은 시작되었다. 벌써 2년째를 맞고 있다. 2021년 첫해에는 금천구 독산초등학교에서 다문화 학생들을 가르쳤고, 올해는 구로구 동구로초등학교에서 5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 다문화 학생들이 실내축구놀이 기구로 함께 모여서 게임을 하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이필열 기자
뜨거운 환대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학교에 도착해서 ‘옹달샘’에서 커피 한잔을 내린다. 그리고 다문화 교실이 있는 4층의 긴 복도를 걸어간다. 3학년 교실을 지나고 6학년 교실을 지난다. 때마침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6학년 학생들과 마주친다. 마주치는 6학년 학생들이 90도로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뿌듯하다. 사랑스럽다. 인생 2막에 들어선 내가 다음 세대들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는 기분이다. 이런 인사를 받으며 걸어가면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도 든다. 그런 마음으로 다문화 교실에 도착했다. 먼저 교실을 환기시키고 코로나 소독제를 뿌린다. 그리고 30여 분간 오늘 수업할 4학년 수학과 국어에 대한 기초수업과목들을 살펴본다. 정서적 멘토링을 위해서 오늘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들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늘도 다름없이 주어진 시간에 다문화 학생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정성을 들인다. 수업이 끝났다. 학교의 정문을 나서며 가슴이 뿌듯하고 벅차다.
▲ 다문화 학생들이 ‘조각 그림 맞추기’를 통해서 협동심을 배워가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이필열 기자
‘더불어 살자’ 이도원 선생님 인터뷰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다문화학습지원단’ 이도원 선생님이 있다. 2년 차인 나에게는 바람직한 다문화 선생님상의 ‘멘토’와 ‘멘티’ 관계다. 이 선생님은 ‘다문화학습지원단’의 첫해부터 함께 하셔서 올해로 무려 4년째 다문화 봉사를 하고 계시다.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봉사의 마음이, 이타의 마음이, 아동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리 긴 시간 봉사하는 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Q. 다문화 봉사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 저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국내 대기업의 핵심 부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였습니다. 주어진 업무량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로 급기야는 건강에 이상이 왔습니다. 심혈관에 문제가 온 것입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반도체 관련된 사업을 직접 하였습니다. 사업은 기대 이상으로 잘 되었지만, 저의 몸과 마음은 다시 병원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사업을 접고서 교육에 관련된 봉사활동을 하면서 다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문화 학생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나라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엄청난 일이 아니란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겨자씨 같은 이런 작은 행동이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믿는 신앙의 이웃사랑의 실현과도 같고, 이런 작은 사랑이 모이면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이 저에게 봉사를 이어 가는 끈이 됩니다.
▲ 다문화 학생들이 미술 수업 시간에 그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 50+시민기자단 이필열 기자
이도원 선생님은 작년에 ADHD 학생을 맡아서 그 학생에게 맞는 교수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을 보았다. 올해는 독특한 국어교육 교수법으로 4학년 다문화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특히, 발음을 정확하게 교정하여 주고, 읽기와 받아쓰기에 익숙해지도록 하였다.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점차 변화되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Q. 특별한 국어 지도법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 저는 다문화 학생들에게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한글 공부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어로 읽는 데 자신감이 없어지고 소심해집니다. 이런 마음이 학교의 전반적인 생활로 이어지는 것을 제가 4년간 다문화 아동들을 가르치면서 보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정한 시간 내에 국어의 문장을 무조건 큰소리로 읽게 해서 먼저 발표에 자신감을 키워 줍니다. 그것도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읽어야 합니다. 그다음엔 3~4회 스톱워치로 읽는 속도를 체크해 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평균적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읽는 게 통계적으로 나옵니다. 이런 지도법이 한글을 늦게 시작한 다문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받아쓰기와 함께 해서 학생들이 국어 실력에 자신감을 가집니다.
Q. ‘다문화학습지원단’ 생활을 첫해부터 함께해 주셨는데요, 다문화학습지원단의 일원으로서 갖게 되는 보람이나 선생님만의 철학이 있나요?
- ‘더불어 살자’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자원봉사를 실천하였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시민사법위원으로 위촉되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다문화 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2019년 50플러스 다문화학습지원단의 원년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시작할 때의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처음 하는 초등학생 교육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50플러스 관계자분들과 활동 학교의 다문화 담당 선생님들의 격려와 배려로 초등교육 방법 등 많은 것을 배우며 차츰 적응할 수 있었으며 어느덧 4년 차가 마무리되어 갑니다. 성장하고 발전해 가며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생활하는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며 3~4년 전에 가르쳤던 학생들이 고학년이 되어서 찾아와 인사하고 스승의 날 감사 인사를 전할 때 이 활동을 하기를 참 잘했다는 큰 감동과 보람을 느낍니다.
미래에 다문화 학생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저의 조그마한 노력과 봉사가 작은 조약돌 역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아이들에게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다문화학습지원단 활동에 소명 의식을 가지고 지속하고자 합니다.
▲ 다문화 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이필열 기자
한국의 다문화 가정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따라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동구로초등학교도 다문화 학생들의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고 담당부장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분명한 사실은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다문화 학생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미래의 인재들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국민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우리 선배 시민들이 나서서 다문화 가정들을 보살피고 돌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보여야 한다. 그들이 한국에 뿌리를 내려서 정착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금천구와 구로구에서 ‘다문화학습지원단’으로 봉사하시는 선생님들을 뜨겁고 가슴 벅차게 응원한다. 선생님들의 이타적인 봉사의 정신이 그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문화 학생들이 하루빨리 한국의 문화에,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미래세대로서 큰 인재로 성장해 나가기를 소망한다.
50+시민기자단 이필열 기자 (pilyul11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