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50플러스센터의 런던 내셔널 갤러리로 만나는 서양미술사강좌 

 

진지한 예술 감상에 이르는 길을 가깝게

흔히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고, 미술은 공간의 예술이라고 한다.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는 기자로서는 음악은 짧은 순간들을 어떤 소리 내는 작업으로 채우는 것이고, 미술은 빈 공간을 어떤 형태와 색채로 채우는 것이라고 초등학생 수준으로 해석해 본다. 예술 양식이야 어느 것이든 공통점은 예술가 개인이 느낀 희로애락의 감정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감상자에게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상자들도 각자의 상황과 추억이 얽힘에 따라 나름대로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떤 예술품이 명곡 또는 명화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마 길고 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인종이나 지위, 빈부에 관계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첫머리의 격언을 감상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른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음악은 어떤 연주자가 연주하는 그 순간이 아니면 사실 오리지널을 감상할 수 없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국내 콘서트 티켓이 3분 만에 동나는 것은 그런 까닭이리라. 그래도 음악은 순회공연이 종종 열리고, LP-CD-스트리밍 단계를 거친 사운드 재생 기술의 발달로 오리지널에 가까운 연주를 감상하는 것이 손쉬워졌다고 할 수 있다. (연주회 현장 분위기라는 것이 기술로 대체 불가능한 부분이 있음은 인정한다.)

 

그런데 미술은 이런 측면에서 감상에 좀 더 제약이 따른다. 예를 들어 명화 모나리자를 감상하려면 우리가 루브르 박물관을 가보던지, 아니면 서울로 공수해 와서 한 곳에 전시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나마 이런 캔버스 회화 작품은 이동이라도 가능하지만,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감상하고 싶다면? 성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해체했다가 서울로 옮겨와서 한 치의 오차(사실 이 정도 오차도 허용되지 않겠지만) 없이 그대로 복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즘 이미징 기술이 엄청 발달했다 하더라도, 미술작품을 IT 기기 스크린에 재현하는 것은 음악을 재생하는 것에 비해 아직 간격이 크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강서50플러스센터 등대교실과 등대지기

이런 참에 강서50플러스센터에서 4일간의 미술 해설 프로그램이 있다길래 1020일 오전에 참관하기로 하였다. 강좌의 주제부터 눈길을 끄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로 만나는 서양미술사이다. 강서50플러스센터가 열린학교 등대교실의 운영방식에 따라 주제를 제안하고 강사를 엄선해서 여는 알찬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우선 담당 강사부터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눈에 봐도 지적(知的)이면서도 친근한 선생님 같은 이미지의 유승연 강사는 2015년부터 2년간 런던 주재원인 남편과 함께 지내는 동안 한 여행사의 현지 가이드로 일한 것이 미술 해설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2년간 런던 시내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500회 이상 가이드하였고, 특히 이번 강좌의 대상인 내셔널 갤러리(London National Gallery)300회 이상 방문하였다고 한다. 귀국 후에는 이어서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 겸 국립중앙박물관 영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의 실력파이다. 그러나 런던에 산다고 아무나 해설 가이드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법, 유승연 강사는 10여 년 전에 모 방송 프로그램의 퀴즈의 달인코너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여 2,000만 원을 거머쥔 수재(秀才)라는 점을 감안하시기 바란다. 유 강사가 소개한 런던 내셔널 갤러리 특징과 가장 적절한 관람요령, 그리고 첫날에 해설해준 몇 개의 명화에 얽힌 흥미진진한 얘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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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 전경 / 서울시 문화관광 해설사인 유승연 강사의 자기소개 타임 / 내셔널 갤러리와 트라팔가 광장의 런던 시내 위치에 대한 설명

 

미술관 옆 동물원이 아니라 트라팔가 광장

우선 내셔널 갤러리는 1824년 건립된 영국의 국립 미술관이다. 토론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가진 나라인데다가 국민 세금으로 건립되는 공공건물이기에 계획부터 완공까지 20여 년이 걸렸다고 한다. 유명한 유럽 박물관 중에 미술품 소장량 면에서는 파리의 루브르(Louvre; 50,000)나 마드리드의 프라도(Prado; 8,000) 박물관보다 적은 편이지만,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그림들이 많아서 질적으로 우수성을 자랑하는 미술관이다. 또한 명화들을 시대별로 정리하여 전시해놓고 있어서 관람이 편리하게 되어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미술관 위치가 런던의 템즈강 바로 위쪽이면서 동서지역의 한복판에 있어서 어디에서든지 접근이 쉬운 장점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 바로 앞이 서울의 광화문광장 격인 트라팔가(Trafalga) 광장으로, 중요한 행사나 공연이 열리는 경우가 많아서 뜻밖의 수준 높은 볼거리를 만나게 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실제로 유승연 강사도 2016년 어느 아침에 잠깐 들리려는 생각으로 트라팔가 광장에 갔다가, 유명 뮤지컬 넘버의 하이라이트 공연이 이어지는 바람에 하루 종일 배고픔도 잊고 즐겼던 추억을 들려주었다.

 

내셔널 갤러리는 4개의 전시관(Wings)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술사의 시대적인 순서에 따라 감상하려면 세인즈베리(Sainsbury)관을 맨 먼저 관람하는 것이 적절하다. 중세 말기부터 르네상스 초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건물의 내부 형태와 인테리어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당시 회화의 핵심적인 변천의 하나는 그림의 주제가 종교 위주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하는 과정에 있었다는 것이다. 중세에는 그림의 목적이 주로 성경의 내용을 일반인에게 그림을 통하여 교육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형화된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유 강사가 보여준 대표적인 중세의 그림은 윌튼의 두폭화(The Wilton Diptych)’이다. 젊은 리처드 2세가 왕위를 위협받으며 고립된 상황에서 성모 마리아와 자신의 수호성인에게 의탁하려고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그림에 사용된 청금석(울트라마린; 당시 중동 아프간 지방에서만 생산)과 계란 등의 물감 소재도 회화사적으로도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중세 후기의 그림이지만 여전히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뿜어내는데, 윤 강사의 역사 해설이 곁들여지자 그림을 새롭게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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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세인즈베리관의 건물 외부 및 내부 모습 / ‘윌튼의 두폭화’. 사실은 뒷면까지 4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초기 원근법을 보여주는 명화 산 로마노 전투’ / 선 원근법의 극치를 보여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데생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그림에 원근법이 적용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유 강사가 윌튼의 두폭화와 비교하여 보여 준 15세기의 그림은 산 로마노 전투(The Battle of San Romano)’이다. 이 그림에서는 종전의 평면적인 화법과 달리 원근법이 적용되었는데, 그다음 세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용한 정밀한 원근법에는 못 미치지만, 시기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화법의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산 로마노 전투는 당대 인기 화가인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가 세 개를 한 세트로 그림을 그렸는데, 나머지 두 개는 각각 루브르 박물관과 피렌체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내셔널 갤러리 첫 번째 픽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세인즈베리관의 전시 작품 중 유승연 강사가 본격적으로 해설을 하여 준 작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The Arnolfini Portrait)’이고 다른 하나는 암굴의 성모(The Virgin of the Rocks)’이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이 부부가 초기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 얀 반 에이크(Janvan Eyck)에게 의뢰하여 결혼을 공식적으로 선언함과 동시에 부유함을 과시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그림에는 많은 상징물들이 퍼즐처럼 들어 있는데, 예를 들면 담비 코트(부유함), 터키산 카펫(부유함), 신발을 벗은 발(신성함), 신부의 최신 드레스(부유함), 강아지(충절), 사과(순종), 샹들리에의 촛불(신의 가호), 오렌지(부유함) 등이 그것이다. 특히 가운데 부분의 거울은 부부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어 그림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있고, 거기에는 절묘하게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다라는 문구를 써넣어 작가의 자부심과 인연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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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 유화의 시대를 연 명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 숨겨진 상징물들의 확대 사진 / 진품 여부를 확인하는 근거로도 사용된다는 미술 재료에 대한 요약 설명

 

그러나 이 작품이 서양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유화(油畵)로 그려진 최초의 걸작이라는 점이다. 그전에는 대부분의 그림이 프레스코(Presco) 기법으로 그려졌다. 회벽에 물감을 칠하는 프레스코 기법은 수정이 어렵고 회벽이 마르기 전에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정밀한 회화 계획이 요구되었다. 큰 그림의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완성해야 했고 덧칠도 불가능하였다. 이런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계란노른자에 안료를 섞은 프레스코 템페라(Tempera) 기법이 개발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이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서 유화가 사용되었는데, 확대해 보면 이전 기법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풍부하고 세밀한 묘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 두 번째 픽 암굴의 성모

유 강사가 두 번째로 꼽은 명화는 너무도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암굴의 성모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것처럼 헤롯왕이 2세 미만의 사내아이는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간 성모와 예수가 세례자 요한을 만났다는 성서 외경(外經)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거의 동일한 그림을 2개 그렸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그림을 밀라노에서 의뢰받아 그리다가 밀라노를 떠났는데, 그 작품은 지금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 당초 주문자인 한 수도회의 법정 소송으로 다시 밀라노로 돌아가 두 번째 작품을 완성하였고 그것이 바로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 있는 것이다. 두 작품은 구도는 거의 동일하지만,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있다. 성모의 손 모습이나, 아기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관계, 천사의 시선과 손짓 등에 차이가 있는데, 이는 원 주문자인 수도회의 요청에 따라 수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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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암굴의 성모쌍둥이 작품. 오른쪽이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 / 명화 중의 명화 모나리자에 적용된 스푸마토 기법을 설명 중인 유승연 강사

 

레오나르도 다빈치 암굴의 성모는 회화기법 면에서도 종전과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스푸마토(Sfumato) 기법이라 불리는 이 화법은 마치 어떤 객체가 뿌연 안개 속에 있는 듯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두말할 필요가 없이 유명한 모나리자의 미소와 뒷배경 처리에도 사용되어 기막히게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스푸마토 기법이다. 미술가이면서 뛰어난 과학자였던 다빈치가 대기 중 수분과 먼지에 의한 빛의 산란 현상을 관찰하여, 그림 속에서 명확한 선이 아니더라도 형태를 오묘하게 구분하여 표현하는 기법으로 정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빠른 말솜씨 덕에 얻은 보너스 보티첼리와 라파엘로

위 두 가지 명화 외에도 유 강사는 여러 그림들을 보여주며 비교 또는 해설을 해주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오히려 중세 회화로 회귀한 듯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 ‘’, ‘비너스와 마르스등의 걸작들과 그 공통모델이었던 요절한 절세 미녀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oucci)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유 강사가 말이 너무 빠른 죄’(사실 엄청 말 속도가 빠르면서도 정확한 발음을 낸다는 것이 놀라운 탤런트라고 느꼈던 바였다)로 시간이 조금 남자 르네상스 3대 화가의 하나인 라파엘로(Raffaello Sanzio)에 대한 해설을 추가해 주었다.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완성하였고 그의 사후 르네상스는 끝으로 치달았다고 할 정도로 평가받는 라파엘로는 특히 성모에 대한 수많은 그림으로 당대의 사랑을 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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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을 거슬러 중세 미술을 구현한 보티첼리의 명작들과 요절한 미녀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 / 성모의 화가 라파엘로의 대표작의 하나인 패랭이꽃을 든 성모’ /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라파엘로가 그린 아름다운 명화들

 

말이 빠른 만큼 웬만한 강좌보다 2배 이상의 정보를 재밌게 전달해준 유승연 강사에게 강의 종료 후 많은 애프터가 쏟아졌다. 어떤 수강생은 유 강사가 진행할 전시회의 일정을 물어보기도 하고, 다른 수강생은 유 강사를 별도로 모시고 관람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였다. 코로나로 막혔던 하늘길이 점차로 열릴 것으로 기대되는 요즈음, 이제는 여행도 단순한 관광여행이 아니라 안목을 높인 문화여행을 즐겨 볼 법한 때라고 생각된다. 또 그게 아니더라도 예술가의 창작물에 얽혀있는 수많은 뒷얘기를 이해하게 된다면, 이 세상을 보는 눈에 조금은 아름다움과 여유가 더해지지 않을까.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parkdongwon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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