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목 감독의 독립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우리 영화에 대한 자부심
영화 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취미 활동란에 적는 영화감상은 거의 상위에 랭크될 듯싶다. 영화는 늘 우리 곁에 흥미롭고 가까이 있는, 다가가기 편한 문화 활동 중 하나이다. 필자도 시네마 키즈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를 좋아하셨던 아버님 손에 이끌려 극장에 다녔고 학창 시절은 영화를 좋아하는 단짝 친구와 몰래 영화관을 들락거리며 성장했다.
그런 영향으로 영화와는 친숙하고 제법 많이 본 부류에 든다. 최근 우리 영화를 보면 느끼는 것이 있는데 영화를 참 잘 만든다는 것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수작들이 나오고 우리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조연상을 자연스럽게 받는 것을 보면 어깨도 으쓱거려진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그런데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만난 독립영화 한 편
영화 한 편을 본다는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무엇보다 감독과의 만남, 감독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기대로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모두의 극장을 찾았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과 관객이 영화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흥미로움이 컸다. 이날 상영하는 영화는 단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박경목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인 ‘말임씨를 부탁해’.
독립영화임에도 인지도와 입소문 탓인지 신청한 분들이 빈자리 없이 앉아 있었다.
‘인디서울 2022’는 평소 접하기 힘든 독립영화를 서울시 내 곳곳의 공공문화공간에서 무료로 상영한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도 캠퍼스와 센터에서 공간 제공과 함께 영화를 상영한다. 기자가 찾은 중부캠퍼스도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 오후 2시, 4층 모두의 강당에서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와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한국 독립영화를 상영한다.
‘말임씨를 부탁해’의 주인공들
독립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와 부양, 요양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를 안고 있어서 영화가 전개될수록 관객들은 영화 속의 인물과 자신의 주변 환경을 동일시하게 된다. 몰입될 수밖에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먹먹함과 답답함,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뒤에 전개될 아픔이 연상되어 편히 웃을 수 없는 영화, 남의 얘기가 아닌 나의 얘기 같은 영화. 영화 보는 내내 나의 어머님도 영화 속에 함께 있었다.
우리에겐 익숙한 60년 차 관록의 여배우, 영화보다는 TV 드라마에서 많이 만난 김영옥 씨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 밖의 등장인물인 김영민, 박성연, 김혜나 등도 눈에 익은 배우들이었다. 그동안 수차례 보아왔던 독립영화 같지가 않다. 아마 익숙한 배우들의 면면 탓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대구에 사는 85세의 노모 말임 씨,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 종욱, 아들이 오는 날 노모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다친다. 혼자 생활이 힘들어진 상황이 된다. 아들은 걱정이 되어 집안에 CCTV까지 설치한다. 현실적으로 아들은 노모를 모실 수가 없으니 요양보호사를 들인다. 아들의 상황에서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이다.
이후부터 노모, 아들, 며느리, 요양보호사, 4각의 마찰이 그려진다. 이해와 의심과 부딪침의 반복, 그러나 이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 아들과 며느리의 관계도 심각해진다. 부양을 위한 비용 문제도 피해 갈 수가 없다. 요양보호사와의 의심으로 이어진 갈등도 심각해진다. 요양보호사인 미선의 엄마가 사망하면서 병원에서 숙식하는 미선은 이제 갈 때도 없다.
미선은 노모의 집에서 쫓겨 나올 때 갖고 있었던 열쇠를 주기 위해 집으로 찾아간다. 그때 노모는 쓰러져 있는 상황. 미선이 노모를 발견하고 조치한다. 이후 갈 데가 없는 미선에게 노모가 제안한다. 나와 함께 있자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둘은 서로 의지하게 된다. 이제 미선이 현실적으로 자식의 역할을 하게 된다. 노모와 미선이 여행을 떠난 빈집에 아들이 온다. 이제 노모에게 자식보다 더 나은 자식은 미선임을 아들 종욱은 깨닫는다. ‘말임씨를 부탁해’는 아들 종욱이 미선에게 던지는 말이다. 다행히 영화는 해피엔드다. 엔딩 자막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관객들은 숨을 멈췄다.
고령화 사회를 맞은 우리들의 이야기
거동이 힘든 노부모를 둔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의 이야기.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현실.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도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떠오르면서 한참이나 먹먹했다.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독의 섬세하고 정교한 연출력에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자전적 영화로 만들었으니 현실감이 크게 느껴지고 감동이 배가 된 듯하다.
노인들을 불러내어 노래도 부르면서 옥매트를 파는 신(Scene)이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 그대로 본 것들이어서 대부분 웃기도 했다가 자신의 부모님들을 떠올리며 뭉클하고 씁쓸했을 것 같다. 생전에 나의 어머님도 똑같았다. 그래도 말임 씨는 쓰러지지 않고 우뚝 서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딸 같은 요양보호사 미선과 여행을 떠나는 장면은 영화 보는 내내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던 필자의 마음을 영화로나마 편안하게 해주었다. 감독에게 감사를 전한다.
(왼쪽) 인디서울 정지원 매니저 (오른쪽) 박경목 감독박경목 감독과의 대화
영화의 엔딩 후 박경목 감독과 관객들이 함께 했다. 감독과의 대화, 놀라웠던 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수준. 장면 하나하나 예리하게 짚는다. 영화를 보고 느낀 점과 재미있게 나누었던 감독과의 이야기 중 몇 대목을 소개해 본다.
• TV에서 방송한다는 예고가 있었는데 일부러 보지 않고 감독과의 대화가 있는 중부캠퍼스를 찾았다는 관객, 울다가 웃다가 8년 전 자신의 엄마 이야기여서 자기 일 같았다는 감동이 있었다.
•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반어법으로 툭툭 말을 던지시는 것도 모르고 나중에 깨달아 보면 아들이 오는 게 좋으면서도 “뭐 하러 와”하면서 마음과는 다르게 나무라는 듯한 표현들, 영화 속의 표현 하나하나가 너무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읽혔다.
• 영화가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래서 감동이 더 컸다. 편안한 상태로 미선과 여행을 떠나 엄마가 없는 빈집에서 차려 놓은 밥을 먹으면서 아들이 말한다. 이젠 CCTV에 의한 감시가 아니라 요양보호사에게 부탁하는 언어, “엄마! 이제 괜찮지?”와 “말임씨를 부탁해”라는 말은 어쩌면 동의어다.
• 60대라는 중국 동포는 자신이 결국 ‘말임씨’다. 앞으로의 부담과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영화에 빠져들었다. 국내 중국 동포가 180여만 명이고 그중 65세 이상이 20만 명이 넘는다. 감독님께서 이주민사회(탈북민, 고려인)를 다룬 영화를 만들 계획이 있으시면 동포사회의 시니어 노령화에 대한 취재에 적극 협조하겠다.
박경목 감독은 영화를 흥미 있고 관심 있게 보아주고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까지 제시해준 관객들에게 감사하고 우리들의 이야기인 현실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해 나가겠다는 것을 말했다. 다음 작품에는 아들이 주인공이 아니고 딸이 주인공인 시선으로. 감독이 전해준 김영옥 씨 등 배우 캐스팅 뒷이야기들도 흥미롭다. “대사가 너무 많아 다시는 주연은 안 하겠다. 이 나이에 내가 칸에 갈 것도 아니고.”
배우들 모두 저예산의 독립영화이지만 부모님 아프신 것들이 자신의 이야기 같아 의미 있게 참여했다는 말도 흐뭇하다. 초고령화되는 우리 사회의, 가족 관계 속의 불편한 현실이 담겨있는 이야기지만 그런 갈등이 오히려 가족 간의 큰 사랑처럼 따뜻하게 느껴지고 큰 감동의 울림으로 전해졌다.
가슴을 울려주고 따뜻한 엔딩의 영화를 만들어준 박경목 감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박 감독과 헤어짐의 악수를 나누며 짧게 한마디 했다.
“영화! 참 좋습니다.”
한마디 더하기
이날 영화 상영 안내와 감독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인디서울 2022’의 정지원 매니저는 우리 영화의 발전을 위해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리고 특히 극장을 많이 찾아와 달라는 애정 어린 협조를 몇 번씩 강조했다. 그녀의 열정처럼 대한민국 독립영화의 발전을 크게 응원한다.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try3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