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한글 글씨를 잘 쓰셨을까? 

세종대왕은 한글로 글씨를 잘 쓰셨을까요? 세종대왕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글을 만드셨지만 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궁서체라는 폰트는 궁에서 쓰였다고 해서 궁체라고 불리는 글씨였어요. 궁체가 만개한 것은 세종으로부터 300년이나 시간이 흐른 영조, 정조 시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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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 임금이 8세 때 쓴 문안 편지(좌), 순정왕후(순종의 비) 서사 상궁 이담월의 글씨

 

명필가를 생각하면 신라의 김생이나 조선의 석봉 한호를 떠올리는데, 이들은 모두 한문으로 글을 썼습니다. 한호는 조선의 외교문서를 썼습니다. 조선시대 한글 명필가는 궁녀였어요. 궁녀라니 좀 뜻밖인가요? 바로 서사 상궁 이담월입니다. 궁녀 가운데 벼슬을 받은 궁녀를 상궁이라 불렀습니다. 서사 상궁이란 왕비나 공주를 대신해서 한글로 편지나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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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봉한호해서첩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사대부들이 쓰지 않는 한글을 권장하기 위해 왕이 내린 명령이나 왕실의 편지를 한글로 쓰도록 했다고 합니다. 궁체는 왕실의 안부 편지에서 시작해서 조선 후기에 소설이 유행하며 소설 필사를 통해 궁 밖에까지 널리 퍼져나갑니다. 그러나 선비들은 한글을 쓰지 않았고, 궁궐의 여자들이 주로 사용해서 아녀자들의 글씨라고 비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아한 글씨를 쓰는 사람들

‘캘리그라피’란 손으로 그린 문자라는 뜻으로,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체를 의미합니다. 캘리그라피 교실(강사 원춘옥)이 동작50플러스센터에서 새롭게 열렸습니다. 캘리그라피 3급 자격증 과정이기도 한 이 과정은 16주 과정으로 15주 공부한 후 16주에 자격시험을 강의실에서 실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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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 긋기 연습

  

전서체의 근원이 된 갑골문자에서부터 예서, 해서, 행서 그리고 초서까지 다양한 글체에 대한 원춘옥 강사의 설명은 떠나온 교실로 돌아온 듯,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어서 캘리그라피 과정에서 중점으로 공부할 한글 서체에 대한 이해까지 16차시로 진행될 학습 내용의 얼개를 안내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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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자모음 쓰기

 

캘리그라피는 자유다

사실 일상에서 붓으로 글씨를 쓸 일은 흔하지 않지요. 축하금이나 조의금을 담는 봉투에 붓펜으로 이름을 쓰는 정도가 일반적이지요. 최근엔 그마저도 글씨가 아예 인쇄된 봉투를 사서 쓰는 일이 더 흔한 요즘이지요. 계절마다 바뀌는 광화문 글판에서 아름다운 서체로 적은 시를 읽으며, 시도 아름답지만 글씨가 아름다우니 더 감동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일상에서 만나는 캘리그라피이지만 아름다움만 생각할 뿐 더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 캘리그라피와 서예는 무엇이 다를까?

 

서예는 법도에 맞춰 쓰는 글씨로 클래식하다면 캘리그라피는 자유로움이 가장 큰 차이라고 원춘옥 강사는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서예가 글씨라면 캘리그라피는 그림이라고 볼 수 있지요. 서예가 글씨를 쓰는 자세와 필법이 규칙적이면서 전통을 중요시하는 반면 캘리그라피는 정해진 필법이 따로 있지 않아 필압 등 자유롭게 새롭게 창조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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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그라피에 쓰이는 다양한 도구

 

캘리그라피는 자유입니다. 필법도 도구도 모두 자유입니다. 전통 서예 도구인 붓은 물론 그림을 그리는 각종 도구, 칫솔, 나무젓가락, 립스틱, 빗자루까지 도구 사용에 제한이 없습니다. 물론 제한이 없다고 해서 아무런 기초가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카소의 난화를 보고서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아서 이런 그림이라면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세계 명화라니 낯설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카소가 죽은 뒤 그가 얼마나 기초에 충실한 연습벌레였는지가 밝혀졌지요. 원춘옥 강사는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초보자라면 붓으로 시작할 것을 권했습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글씨라도 잘 쓰고 싶어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분에게 글씨는 타고 나지 않으며 쓰는 만큼 느니, 연습하면 된다고 응원으로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글씨에도 감정이 있다

글씨에도 감정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글씨를 쓰는 순간 글씨 쓰는 이의 감정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급하면 급한 대로, 느긋하면 느긋한 대로, 다정하고, 쓸쓸하고, 근심조차 글씨에 담긴다니 글씨 쓰는 일이 더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문을 열지 못합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김이 맛나 보여서 이따금 들러서 만두를 사 가곤 했던 동네 만둣집에 셔터가 내려 있고, 그 위에 메모 한 장 붙어 있었습니다. 글씨에서 슬픈 느낌을 받았습니다. 며칠 지나고 다시 문이 열리고, 변함없이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그냥 지나칠 수 없었지요. 만두를 주문하고 물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글씨가 슬퍼 보였구나, 글씨에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그날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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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선 긋기 연습

 

“맷돌 돌리듯 동작을 크게 하세요.” 

붓을 움직이지 말고 팔을 움직이라는 선생님은 동작을 크게 크게 하라면서 운전대를 돌리듯, 공원 팔돌리기 운동기구를 돌리듯, 맷돌을 돌리듯 동작을 크게 하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맷돌을 돌리듯 동작을 크게 돌리라는 말씀이지요?” 하는 말에 웃음이 터졌는데요. 선 긋기 연습에 열중하느라 숨소리도 안 들릴 것 같았는데 모처럼 먹향과 웃음소리로 강의실 안 공기가 출렁였습니다.

 

 

50+시민기자단 김영문 기자 (aidiow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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