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50플러스센터의 ‘신나는 VR버스 체험’ 강좌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을 VR이 연결해준다면…
스크린에 한 여성의 시점에서 이동하면서 보는 장면이 나타난다. 아마 어릴 적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살던 집인가 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마당과 함께 한켠의 꽃밭이 눈에 띈다. 납작한 옥상을 가진 2층 양옥집은 50플러스 세대들이 어릴 때 흔히 보던 집의 형태 그대로다. 마당엔 빨랫줄에 이불보로 보이는 커다란 빨래와 옷가지들이 널려 있다. 어디선가 나타난 강아지가 재롱을 부리면서 오랜만에 보는 식구를 반겨준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어 계단을 내려오는 어머니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실루엣이 비치는 얇은 이불보를 사이에 두고 친정어머니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하나(출연자 여성의 이름)니? 하나 왔니?” 현실에선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상의 세계에서 재현한 모습이 빨래를 젖히면서 나타나는 순간, 출연자는 울음을 삼키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어머니는 평상시 늘 대하던 그대로 “회사는 잘 다니니? 밥은 잘 먹고 댕기고?” 하면서 약간은 시크하게 인사를 받는다. 그 순간, 이 영상을 지켜보는 강의실은 먹먹함에 휩싸이고 마음이 좀 더 여린 이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 ‘신나는 VR버스 체험’을 알리는 강서50플러스센터의 입간판 / VR 영상 안에서 출연자를 반기는 가상의 어머니 영상 / HMD 고글과 VR용 글로브를 통하여 가상의 어머니와 접촉하며 감각을 느끼는 현실의 출연자 모습
사실 이 영상물은 어떤 방송국에서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의 발전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 방영한 것이다. 화면은 조금 컴퓨터 그래픽의 티가 나지만 상당히 사실적이다. 그러나 이 영상물이 흔히 알려진 입체(3D) 영상과 다른 점은 출연자가 화면상의 어머니와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인터랙티브; interactive) 점이다. 머리에 쓴 물안경(고글)같이 생긴 기기와 손에 낀 스키장갑 모양의 장비(글로브)를 통하여 화면상의 상대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VR 영상물이 3~4년 전부터 매우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VR, AR, MR, XR… 뭐가 다른지는 알아야
감성을 자극하는 VR 영상으로 시작한 강좌는 강서50플러스센터에서 김보영 강사가 진행하는 ‘신나는 VR버스 체험’ 강좌이다. 열다섯 명의 시니어 수강생들이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기술 발전을 경험하기 위해서 모여 있다. 이미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VR의 세계에 대해서 상식적인 정보를 많이 접한 터이겠지만, 김보영 강사가 다시 한번 정의를 내리면서 출발한다. VR은 가상현실, AR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MR은 혼합현실(Mixed Reality), XR은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확장현실(Extended Reality)로 부른다. 그러나 이들 기술의 의미는 계속 발전과 변형을 거듭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AI와 딥러닝(Deep Learning)과 같은 부문의 급성장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VR의 과학적 원리와 간단한 역사가 소개되었다. 어찌 보면 VR이란 ‘눈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로 뇌를 속이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현대로 들어와 1957년에 ‘오토바이 센소라마’라는 장비가 고안되어 가상으로 오토바이를 주행하며 바람, 풍경, 소리, 동작 등을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1960년대에 시험적인 VR 고글이 개발되고 컴퓨터의 발달과 더불어 VR 기술도 발전하였으나, 워낙 대용량·대형의 컴퓨터가 필요하여 발전이 더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대부터 머리에 쓰는 HMD(Head Mount Display)를 비롯한 VR기기에 대한 혁신이 누적되면서, VR 발전의 양대 과제인 휴대성과 고화질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기반으로 한 VR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PC 기반 VR보다 보급이 엄청나게 촉진되고 있다고 한다.
▲ VR 입문 내용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는 김보영 강사 / 원조(?) VR기기와 1960년대 개발된 초기의 HMD / 최근의 VR 기술 발전과 활용 사례에 대해 설명하는 김보영 강사
이처럼 VR/AR의 제작과 보급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면서 활용되는 분야도 확대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오락(테마파크), 게임, 공연과 같은 분야 외에도 의료분야나 교육분야, 그리고 부동산이나 의류·기구 판매와 같은 상업분야에도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비슷한 화상회의(Video Conference)라 하더라도 Zoom이나 Webex는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방을 호출하여 화면상으로만 의견을 주고받는 정도라면, VR회의는 실제 참가자들이 한 장소에 있는 것처럼 자유롭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촉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손으로 만들어 보는 카드보드 VR기기
VR에 대한 설명을 듣는 내내 사실은 책상에 미리 놓여 있던 카드보드(두꺼운 종이)가 어떤 용도인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마침내(?) VR의 원리, 역사 및 현황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이어서 수강자들이 간단하게 VR기기를 만들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아니,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서 편집하거나 이리저리 활용하는 것도 서투른데 VR기기를 만든다고? 의구심이 들었지만, 카드보드 세트를 열면서 이내 마음이 좀 놓였다. 어린이들이 미리 모양이 만들어져 있는 카드보드로 건물이나 자동차 같은 것을 만드는 식이었다. 필요한 부분만 떼어 내서 김보영 강사가 가르치는 대로 접고 붙이고 나니 카드보드 구글(Google) VR기기가 금방 완성되었다. (솔직히 기자는 약간 버벅대면서 애를 먹었지만.)
▲ 접어 만들기 전의 구글 카드보드 VR기기(노란색)와 AR Cube Box / 접기가 완성된 카드보드 VR기기(노란색)와 AR Cube Box 모습 / 카드보드 접기와 테스트에 열중하고 있는 수강생들
그다음엔 각자의 스마트폰에 360VR이라는 유튜브 사이트의 VR용 영상물을 재생해서 구글 VR기기 앞칸에 장착한다. 그러면 대안 렌즈를 통해 눈앞에 믿기 어려운 광경들이 펼쳐진다. (기자의 능력으론 그 경이로운 영상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나중에 알았지만, 구글 VR기기는 2,000~3,000원이면 구매할 수 있으니 사서 실제 경험들 해보시라!) 기자가 골라 본 것은 지구 위성에서 본 우주의 모습이었는데, 영화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에서 느꼈던 감흥이 되살아나는 듯하였다. 2,000~3,000원짜리 카드보드 박스에 든 동전만 한 렌즈 두 개로 이런 VR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요술 같은 미로찾기 상자 AR CUBE BOX
그다음에 만든 AR Cube Box라는 이름의 정육면체 카드보드 박스가 더 궁금해졌다. 만들기는 당연히 VR기기보다 훨씬 간단한데 사용 방법을 짐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스의 각 면에는 마치 고대로부터 내려온 암호와 같은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우선 김 강사의 지도에 따라 각자의 스마트폰에 CubeAR이라는 앱을 깔았다. 그다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듯이 그 박스를 비추자 신기한 변모가 일어난다. 박스의 모양이 입체적(3D)으로 바뀌고 면마다 움푹 파인 미로(迷路)가 나타난다. 그 시작점에 내 쇠구슬이 있는데, 박스를 손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면 이놈도 중력에 따라 이동한다. 그러면서 미로 여기저기에 있는 보물이나 영물을 획득하는 게임인 것이다. 여섯 면을 모두 정복하면 다음 레벨로 올라갈 수 있다. 게임 자체는 어린이들이 하는 슈퍼마리오식으로 간단한 것인데, 스마트폰을 통해 증강현실(AR) 바탕에서 즐기니까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마법상자를 손에 쥐고서 게임을 하는 느낌이어서 재미가 몇 배로 커질 수밖에 없다.
▲ AR Cube Box를 스마트폰 앱에 비추기 전 모습 / 스마트폰 앱에서 입체적으로 변하기 직전의 AR Cube Box / 요술처럼 입체적 미로 형태로 변모한 AR Cube Box
가상의 롤러코스터 그 이상, VR 메타버스
수강생들이 구글 VR기기와 AR Cube Box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자, 김보영 강사가 다음 코스를 위해서 이동해야 한다고 재촉한다. 바로 오늘 강좌의 하이라이트인 ‘VR 메타버스’를 타보기 위해서다. 수강생들은 아쉬워하면서도 VR 메타버스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안고 200~300m 떨어진 등양초등학교로 삼삼오오 이동하였다. 도착하니 벌써 앞면에 ‘메타버스’라고 써 붙인 대형 관광버스 한 대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요즘 화제인 메타버스는 Meta+Universe란 의미인 Metaverse이고, 이건 Meta+Bus라고 중의적으로 봐야 할 듯하다.)
좀 기다려서 메타버스에 올라타자 이색적으로 창 쪽을 향해 10여 개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그 앞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약간의 장치들이 놓여 있고, 오늘의 핵심인 VR 감상용 헤드기어(HMD)가 놓여 있다. 김 강사와 보조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단단히 멘다. 마치 언젠가 오래전이지만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에 준비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강사가 소리쳐 주의사항을 강조한다. “소지품은 앞에 내려놓으시고, 중간에 멀미가 심하거나 이상이 느껴지면 손을 들어 주세요!” “아니면 불편을 느끼실 때 눈을 감아 주세요!”
기자도 좌석에 앉아 HMD를 쓰자 잠시 후 VR 영상이 시작된다. 처음 영상은 기자가 산타클로스가 돼서 앞의 루돌프 사슴 두 마리가 끄는 썰매에 올라앉아 있는 상태이다. 썰매가 출발하자 눈 덮인 산과 계곡을 질주하기 시작하는데 급상승과 급락, 급회전을 반복하니 눈앞이 좀 어지럽다. 거기에다 좌석까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움직여 주니 그 스릴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와 비슷한 것을 4D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4D와 VR이 다른 점은 기자가 고개를 전후좌우로 돌리면 다른 광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자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각각 백인과 흑인 여성들이 앉아 있어서 손 인사를 나눌 수도 있었다.
▲ 수강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VR 메타버스 / 메타버스 안의 VR 영상 및 좌석 모션 조종 기기들 / VR 체험 좌석에 앉고 있는 수강생들. 맨 앞이 김진기 수강생
두 번째 VR 영상은 커다란 바퀴(Wheel) 같은 장치에 올라타고 완전히 한 바퀴를 도는 VR놀이였다. Cyber Space라는 이름의 놀이기구에서 공중으로 급상승했다가 전속력으로 땅바닥을 향해 질주하는 영상이다. 산타클로스 영상보다 단순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니 한층 더 아찔함을 가져다준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데, 보조 강사들은 수강자들에게 계속해서 “참기 힘들면 손을 들어 주세요!”라고 외치지만, 시니어 수강생들은 악착같이 VR이 가져다주는 스릴의 짜릿함을 즐기는 모양이다.
4차 산업혁명을 대하는 50+세대의 자세
그런데 실습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기자의 옆자리에 앉았던 김진기 수강생(70)은 “사실 중간에 눈을 감아 버렸다”라고 고백하면서 기자에게 괜찮았냐고 물어보았다. 마침 오늘 VR 강좌 실습이 이어지는 바람에 수강생의 소감을 묻기에 적당치 않았는데, 김 수강생과 꽤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알고 보니 김 수강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강의를 한 지식인이었다. 놀라운 점은 은퇴 후에 사이버 대학 등에서 정식으로 전산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였고, 지금도 모 사이버대학에서 AI학과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존경스러운 마음에 왜 이런 강좌들을 수강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나라가 저출산과 노령화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 분명하다.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가능 인구의 부족을 메우면서 노령인구의 소득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시니어들을 재교육하여 생산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라는 신념을 주장하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만, 50플러스 세대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공부와 경험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답답해하였다.
기자로서도 오늘 VR 강좌를 수강하면서 자칫 영상이 주는 감흥과 기기를 만들어 보는 재미에만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김진기 수강생 덕분에 우리 사회에 깨어있는 시니어 지식인이 만만치 않게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다시 한번 50플러스 센터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하루였다.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parkdongwon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