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이발사가 임금의 부름을 받았다. 아마 수십 년 동안 머리를 손질해 오며 남다르게 뛰어난 기능을 지닌 이발사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임금이 부를 리 없었을 테니까. 임금의 머리를 손질 하다가 이발사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임금의 귀가 당나귀의 귀처럼 생겼던 것이다. 임금은 이발사에게 이 일을 비밀에 부치라고 엄명을 내렸다. 남모르는 비밀을 간직하고 가슴앓이를 하던 이발사는 마침내 대나무 숲으로 찾아가 외쳤다. "임금의 귀는 당나귀 귀다!" 그때부터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는 같은 말이 울려 나왔고 마침내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동화이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권력에 대한 풍자일 수도 있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가르침일 수도 있다. 기자는 대나무 숲으로 걸어가 큰 소리로 외친 이발사의 자발적 행동에 주목한다. 그것은 내밀하게 가꾸어온 자신만의 '당나귀 귀(지식이나 정보)'를 최대한 세상과 공유하려는 열정적 의지이자 실천이기 때문이다.

 

   

 

11월15일,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라는 '대나무숲'에서는 13명의 '50+이발사'들이 모여 그런 '당나귀 귀를' 외쳤다. 이들은 사전심사를 통해 40명의 후보 중에서 선발된 예비강사들이었다. 발표 주제는 「디지털 장의사」, 「오카리나 연주」, 「오디오 시스템과 드론 제작」, 「속독법」, 「시 창작」, 「탱고」, 「와인」, 「영화 감상」, 「유로 에니어그램」 등등 각양각색이었다. 지금도 생업으로 하고 있는 생생한 지식을 가다듬은 이도 있었고,  퇴직 전에 다루었던 전문 정보를 더욱 숙성시킨 이도 있었다. 취미로 즐기던 일에 천착하여 전문성을 강화한 사람도 있었고, 50+캠퍼스의 교육 과정을 수강한 동기생들이 만든 커뮤니티의 집단 연구를 정리한 사람도 있었다. 50을 전후한 나이에 자신이 가진 꿈에 좀더 전문성을 기하기 위해 하던 일을 중단하고 먼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이도 있었다. 기자가 그 과감한 결단력에 놀라움을 표하자 그이는 "더 늦기 전에 참된 나를 알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라고 심상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예비강사들의 경력과 참여 사유, 발표 콘텐츠는 다양했지만 어느 것이나 삶을 윤택하게 만들려는 의지라는 점에서는 한가지로 동일했다. 

 

      


근자에 고령화 사회에 대한 말과 논의가 무성하다. 본 기자 역시 '60+'의 나이인지라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각종 매체를 관심 있게 보게 된다. 우리 사회가 고령의 세대들과의 공존에 대해 고민해 주는 것은 고맙고 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불편해질 때가 있다. 고령의 세대를 마치 정신적 성장을 멈춘 고집불통의 '꼰대'로 간주하거나, 아니면 사회적 부담감을 계량화 하여 마치 공동체 발전의 걸림돌일 뿐인 잉여적 존재로 바라보는 듯한 시각을 대할 때 그렇다. 그것은 외형적 젊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만큼 왜곡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나이를 먹어간다.  '50+'는 '50-'의 퇴적물이거나 '50-'와 대립되는 비교열등의 존재가 아니라 총체적인 생의 연장선에 있는, 동일하고 동시에 독립된 존재이다. 생의 어느 지점을 지나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정직하게 대면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나이에 상관없이 찬란하다. 젊음과 늙음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자 가치는 오직 열정 뿐이다. '50+ 피티데이'에 참가한 예비강사들이 보여준 열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경연이라는 절차를 거치다 보니 참가자 13명의 중 누구는 겨울학기를 맡는 기회를 가질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일부는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그 일부의 분들에게 너무 상투적이라 위로의 효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테레사 수녀의 말을 진심을 담아 건네고 싶다.


 "신은 우리가 성공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노력할 것을 요구할 뿐이다." 

 

발표가 모두 끝난 뒤 행사 진행자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 이어 일반 관람자들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본 기자는 경연 내내 느꼈던 솔직한 느낌을 큰 소리로 말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참가자 모두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우리는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까? 표절을 허락한다면 오늘 저는 '열정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발표하신 분들이 보여준 열정이 그렇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