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벌써 오래전에 원로급 여배우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고통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지만, 그 전에 먼저 책 제목 읽기가 편안하지 않았다. 내 관념상 ‘꽃’과 ‘때리다’는 한 문장 안에서 서로 ‘잘 붙지 않는’ 말들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꽃’과 ‘먹다’ 또는 ‘꽃’과 ‘마시다’도 그다지 ‘잘 붙는 조합’은 아니라는 것이 이번 취재를 시작하며 가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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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차와 꽃 코디얼을 만드는 재료 마리골드.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꽃을 부르는 말들

김춘수 시인은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은 다만 제재일 뿐이고 존재의 의미와 인식에 관한 생각을 적은 시라지만 그 존재의 자리에 꽃을 놓아서 어색할 것은 없겠다. 실제로 우리는 다양한 이름으로 꽃을 부른다.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혹 귀엽다거나 사랑스럽다는 등 눈에서 태어난 정서적 어휘들로 꽃을 부른다. 

 

한편 ‘향기’라는 대표 단어 뒤에 잘게 나뉜 감각적 수식어들이 꽃의 냄새를 이름 짓는다. 그리고 달콤하거나 쌉싸름하거나 구수하거나 매콤하다는 등으로 더욱 몸에 밀접한 감각 언어로 꽃의 맛을 나타낸다. 그렇게 오감에서 비롯한 다양한 인식을 담아 꽃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 꽃은 우리에게 다양한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여러 용도로 꽃을 이용해왔고 이내 사라지는 꽃의 향과 맛과 모양을 잡아두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그 방법이 발달하면서 그동안 주로 시각과 후각으로 꽃을 즐기던 사람들이 점차 미각을 통해서도 꽃의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즐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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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우러난 마리골드 꽃차.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꽃을 오감으로 즐기는 시대

우리가 꽃을 식용으로 사용할 때는 주로 말리고 우려서 차로 마신다. 또는 술을 담는 재료로 사용하거나 화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요즘은 산사 아랫동네뿐 아니라 건강식을 파는 식당에서도 식용 꽃을 얹은 비빔밥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꽃차와 꽃청도 카페와 인터넷 상점에서 쉽게 즐기거나 살 수 있게 되었다. 단짠으로 대표되는 강한 맛에 중독된 세대가 은은하고 튀지 않는 꽃의 미각을 즐기게 된 것은 꽃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남김없이 몸에 담으려는 욕구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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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로운 맛의 즐거움(꽃청 만들기)’ 강의 진행 모습.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향기로운 맛의 즐거움

동작50플러스센터는 지난해부터 ‘향기로운 맛의 즐거움(꽃청 만들기)’ 강좌를 지속해서 개설해 오고 있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날 강의 시작 시각이 아직 멀었는데도 강의장인 ‘익힘 공간’ 바깥으로 그윽한 꽃향기가 번져 나왔다.

 

문을 여니 강의장 안에는 벌써 수강생 대부분이 모여 강사와 꽃차를 나누며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기도 전에 예쁜 잔에 꽃차부터 한 잔 따라 준다. 향긋한 냄새와 은은한 맛 그리고 고운 빛이 몸과 마음에 편안하게 담겼다. 오늘은 모두 네 번의 강의 가운데 첫 시간으로 마리골드 코디얼을 만드는 날이다.

 

약속 시각이 되자 이선희 강사가 꽃차와 꽃청은 오감 즉 눈과 입, 코 그리고 마음과 몸으로 함께 즐기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강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다루게 될 마리골드의 특징과 효능, 코디얼 방법을 설명한 후 실습에 들어갔다.

 

예고된 재료 마리골드에 아마란스가 더해져 두 가지 코디얼을 만드는 것이 오늘의 목표가 되었다. 재료인 아마란스와 마리골드, 레몬을 씻고 다듬었다. 그리고 시럽을 만들기 위해 큰 통에 물을 채우고 설탕을 부은 뒤 레몬을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손질한 아마란스와 레몬 조각을 병에 채워 넣은 후 시럽이 끓는 동안 마리골드를 덖어 꽃차 만드는 과정을 실습했다. 꽃을 다듬어 덖고 식힌 뒤 뒤집어서 다시 덖기를 여덟 시간에 걸쳐 아홉 번 반복하는 인고의 과정이었다. 방금 마신 마리골드 꽃차 한 잔에 든 시간과 정성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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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첫 시간에 완성한 마리골드와 아마란스 코디얼.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즐기는 꽃차와 꽃청

꽃 코디얼이라고 부르는 꽃청은 유럽식 천연 시럽으로 재료인 꽃의 색과 향, 모양을 그대로 담아두는 장점이 있다. 카페에서 비싸게 마시던 플라워 에이드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재료가 될 뿐 아니라 샐러드드레싱과 차, 요구르트 첨가제, 칵테일로 즐길 수 있고 설탕을 대신한 고급 요리재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꽃차가 꽃을 덖거나 말려서 꽃의 모양과 맛 그리고 향을 보존한 것이라면 꽃 코디얼은 그것들을 시럽 안에 가둔 것이다. 꽃차를 마시며 재료 본연의 순수한 맛을 즐긴다면 꽃 코디얼로는 시럽이 더해진 맛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긴다. 어느 것이든 꽃의 모양과 향 그리고 맛을 깊이 있게 보존하여 즐기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꽃 코디얼 만들기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과정이다. 그 중간에 남는 쪽 시간은 다양한 꽃차를 맛보는 시간이었다. 말려놓은 연잎과 비트, 도라지, 아카시아꽃을 우려서 맛보거나 재료 그대로 씹어 보며 꽃차의 즐거움을 하나하나 알아갔다. 잘 말린 아카시아꽃을 입에 넣으니 어릴 적 한 움큼씩 훑어 씹으며 느꼈던 단맛과 향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이윽고 시럽이 끓어오르자 아마란스를 담은 병에 시럽을 부어 아마란스 코디얼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시럽에 다듬어 씻어놓은 마리골드를 넣어 끓인 후 꽃과 시럽을 병에 담아 마리골드 코디얼을 완성했다. 그 사이 아마란스 코디얼이 벌써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선희 강사는 신중년 세대의 수강생들이 꽃을 사랑하듯 자기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꽃차와 꽃청을 즐기면 좋겠다고 했다. 강의 두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질문하고 맛보고 움직이며 배우는 수강생들을 보고 있자니 강사의 바람대로 그들은 벌써 꽃의 모든 것을 오롯이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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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가지 꽃으로 만든 꽃차들. ⓒ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현실과 낭만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꽃의 맛과 멋

글머리에서 나는 ‘꽃’과 ‘먹다’ 또는 ‘꽃’과 ‘마시다’가 잘 어울리는 단어 조합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취재를 시작했다고 적었다. ‘꽃’이 지극히 정서적이라면 ‘먹다’와 ‘마시다’는 기본적 생존 본능에 충실한 동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필가 피천득은 그의 글 ‘맛과 멋’에서 이렇게 썼다.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이 글에 ‘꽃’을 넣어 다시 읽어보니 그동안 우리가 주로 꽃의 멋만을 즐기며 지내온걸 알겠다. 꽃을 보며 멋있다고는 해도 맛있게 생겼다고는 좀처럼 하지 않는 데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꽃에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멋이 있어서 좋다. 거기에 더해 이제 우리는 이전보다 더 현실적이며 감각적인 방법으로 꽃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피천득은 이어서 맛은 몸소 체험하는 것이고,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되는 것이라고 했다. 동작50플러스센터의 ‘향기로운 맛의 즐거움’ 첫날 강의 현장에서 나는 꽃과 꽃을 다루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꽃의 멋을 한껏 음미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꽃차와 꽃향기를 나누며 꽃의 맛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체험했다.

 

그 맛을 표현하기에 내 언어가 턱없이 가난하여 유감스러우나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이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피천득의 글처럼 꽃의 맛과 멋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황홀함에 감사했다.

 

강의장을 나설 때 그동안 눈과 코에 익숙했던 꽃은 어느덧 입과도 친숙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50+시민기자단 장승철 기자 (cbsan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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