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超)인기, 강서50플러스센터의 ‘어서 와! 미싱은 처음이지?’ 강좌 

 

■ 도대체 어떤 강좌이길래 이렇게 인기?

 

10여 명의 여성이 모여서 바쁘게 옷감을 재단하기도 하고 열심히 미싱을 돌리곤 한다. 간간이 리더로 보이는 여성이 다른 여성들을 앞으로 불러 모아 칠판에 무엇인가 적으면서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지시한다. 작업자들은 다시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 재단이나 미싱질을 하다가 중간중간 리더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또한, 리더는 작업자 사이를 돌아다니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장면을 보고 열악한 노동환경의 대표 격인 봉제공장을 먼저 떠올린다면 당신은 대한민국의 50플러스 세대임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이곳은 내부 환경이 쾌적하고 예술적인 것으로 소문난 강서50플러스센터 지하 1층에서 진행 중인 ‘어서 와! 미싱은 처음이지?’ 강좌의 중급자 클래스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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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50플러스센터의 미싱 강좌 안내판, 공동실습실 전경과 실습실 내 한쪽 벽면. ⓒ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매주 화요일 오전에는 미싱 중급자 클래스가, 그리고 오후에는 고급자를 위한 클래스가 열리고 있다. 널찍한 강의실과 개인별로 작업하기에 넉넉한 크기의 작업대, 그리고 1인 1대씩 사용할 수 있는 고급 SINGER 미싱까지 갖춘 공동실습실이다. 잘 정리된 강의 및 작업 공간도 예상보다 훨씬 여유로워서 인상이 깊지만, 그동안 미싱 강좌에서 만든 앙증맞은 봉제 소품으로 장식된 벽면이 공동실습실 바깥 강서50플러스센터 내의 다른 벽면 공간처럼 창의적이기까지 한 느낌을 준다.

 

■ 50플러스 세대 추억의 주부 애장품, 수출 산업 발전의 원동력 

 

기자의 생각에 50플러스 세대의 일원이라면 미싱(미싱기)에 대한 기억이 최소한 두 가지로 남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선 첫 번째로, 1960~70년대에 집안에 미싱기 한 대가 있으면 뭔지 모르게 뿌듯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 50플러스 세대의 어머니 세대만 해도 젊었을 때는 대부분 손바느질로 집안의 옷가지나 베갯잇, 손가방, 커튼 등을 만들거나 수선하곤 했다.

 

그러다 가정마다 경제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집안에 재봉틀(미싱기)을 들여놓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발틀의 완급을 오묘하게 조절하며 탁상 위의 옷감들을 요리조리 움직여서 노루발(고백하건대, 이번에 취재하면서 그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이로 순식간에 바느질을 완성해 내는 어머니의 손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집안에 별다른 생활용 공업제품이 없었던 그 시절에 미싱기는 아마도 가장 값진 살림 도구의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사실 우리나라 가정에 가장 먼저 보급되기 시작한 신식(?) 공업제품이 TV인데, 그마저도 1969년에야 보급률이 10%를 넘었다. 그것도 당연히 모두 흑백 TV였고. 그다음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냉장고도 10년 뒤인 1979년까지도 절반가량의 가정에는 냉장고가 없었다고 한다. 세탁기 보급률은 1988년에 50%를 넘어섰고, 청소기와 전자레인지는 1990년대 중반에야 일반화되었으며, 에어컨은 가장 늦은 2000년대 후반이 돼서야 보급률이 50%를 넘겼다. 그러한 시절에 미싱기는 우리나라 주부들에게 가장 필요하고도 아끼는 애장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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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영 감독이 1960년 발표한 영화 ‘하녀’ 속에 등장하는 미싱기의 모습. ⓒ 네이버 영화

 

두 번째로, 50플러스들에게 떠오르는 미싱의 의미는 1970~80년대 우리나라 수출경제의 발전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요즘 세대는 우리나라 수출 주력 품목이라고 하면 당연히 반도체와 IT 제품, 자동차와 부품, 선박과 중장비, 석유화학제품 등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약 20~30년간 이러한 수출 품목 구성에 큰 변화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모두 아는 것처럼 1960년대 중반에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초기에 수출의 주력산업으로 디딤돌을 놓은 것은 바로 봉제를 포함한 섬유산업이었다. 당연히 50플러스 세대는 섬유산업이 우리나라 경제의 1970~80년대 성장을 이끌었던 사실을 젊은 시절에 보고 들었고, 또한 일부는 그것과 관련된 부문에서 땀 흘려 일했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1991년까지 수출 품목의 1위가 의류봉제 제품이었으며, 그 의류제품의 생산수단이 바로 미싱(재봉틀)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30~40년 전처럼 수백 명의 여직원이 봉제공장에서 일사불란하게 미싱을 다루는 장면은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대형 봉제공장은 동남아로 산업의 중심이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2만여 개의 봉제 업체가 솜씨 좋은 미싱 기술로 운영되면서 한국의 패션산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도 이런 점을 도시재생 또는 도시개발의 소재로 활용하여 2018년 4월 창신동 봉제거리에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라는 봉제 역사를 전시한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지금까지 총 2만 5,000여 명이 다녀갔다는데, K-패션산업을 받쳐주는 봉제산업의 역사와 가치를 느껴 보고 싶은 사람은 이곳을 방문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 강서50플러스센터 미싱 강좌를 알차고 재미있게… 이상미 강사

 

강서50플러스센터의 미싱 강좌가 특별하다면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은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이상미(더쉼 운영자) 강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부터 이곳에서 미싱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2020년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강좌를 연기하였다가 작년부터 다시 제한적으로나마 강좌를 재개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초급 과정과 중급 과정을 담당하고 있으며, 수강생들의 실력 향상과 지원 증가에 따라서 고급과정도 개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느 딸들처럼 어려서부터 어머님이 미싱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싱에 관심을 갖게 됐다”라는 이 강사는 대학생 때부터 본격적인 취미로 삼기 시작하여 독학하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따지면 어언 30년의 미싱 경력을 갖게 됐고, 단순한 취미 수준이 아니라 봉제 부문을 창작 전문 디자인 분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소잉 디자이너(Sawing Designer) 자격증까지 취득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한국재봉기술개발원이 산업자원부 허가 제2015-54호로 등록하여 소잉 디자이너 민간자격증을 발급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ASDP(Association of Sawing & Design Professionals)와 같은 단체에서 유사한 성격의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이상미 강사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외부활동이 제한되고 ‘집콕’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미싱과 같은 취미생활의 인기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특히, 미싱 기술은 다른 취미활동과 달리 온라인이나 유튜브 수업만으로는 쉽게 습득하기 어려워서 더욱 오프라인 강좌에 대한 욕구가 늘어난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유튜브 등을 통하여 온라인으로 독학을 하게 되면 미싱의 기본적인 작동 방법은 익힐 수 있겠지만, 패턴을 보는 법이나 재단을 요령 있게 잘하는 방법 같은 것들은 경험자와 함께 실제로 원리를 적용해 봐야 독자적인 작업이 가능할 수준까지 실력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완전 초보자가 어느 정도 숙달이 되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냐는, 다소 어리숙한 질문에는 “열심히 따라 한다면 1주 1회씩 10주 정도면 간단한 작품인 쿠션 커버, 베갯잇, 주방 앞치마 등은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심지어는 남성도 가능하다며, “사실 알고 보면 유명한 재단사(?)는 남성이 오히려 많지 않으냐?”고 반문하였다.

 

이런 분야에 대해 아는 게 적은 기자가 잠깐 생각해 보아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패션디자이너(소잉 디자이너와는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기능상으로는 양자를 겸해서 출발하는 경우가 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에는 남성이 정말 다수가 아닌가 할 정도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몇몇 여성단체나 직업훈련기관 등에서 미싱 과정을 운영 중이기는 하지만, 일반인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좌는 강서50플러스센터 말고는 많지 않은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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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강 중인 이상미 강사와 수강생별 1:1 지도 모습. 가지런히 정리된 준비물들도 보인다. ⓒ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미싱 경력 30년의 이 강사에게 새삼 미싱의 매력에 대해서 묻자, “내가 원하는 원단을 사용해서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내가 필요로 하는 소품들을 만들어 쓸 수 있다는 점”이라는 대답을 주었다. 사실 기자의 눈에도 최근에는 생계로서의 바느질이 아니라, 나만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DIY 창작물을 제작한다는 의미가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여유 시간에 쓸모있는 물건을 스스로 제작할 수 있는 유용한 취미로서 넓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강사는 강서50플러스센터 수강생들이 제작한 미싱 결과물들을 단순히 개인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도록 색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유아용 턱받이나 베갯잇 같은 침장품을 만들어 관내 보육원에 기부하려는 것을 들 수 있다. 오는 7월 6일, 강서50플러스센터에서 개최하는 ‘어른이랜드’ 행사에서 미싱 과정 수강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플리마켓에도 참가하여, 그 수익금이 좋은 곳에 쓰이는 데에 힘을 보태려고 하는 일도 그중의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미싱 기계 자체에 대하여 몇 가지 질문을 더 하여 보았다. 강좌를 들은 뒤에 미싱을 장만하려면 어떤 제품이 적당하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비싼 제품일수록 품질이 좋고 다양한 작업의 편의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적당한 가격대(50만 원 내외)의 미국 S브랜드나 일본 B브랜드, I브랜드 등 대체로 많이 알려진 제품이면 충분히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팁을 주었다. 또한,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간이 미싱 같은 제품보다는 중고를 구입하더라도 정식 미싱 기계를 구매해서 사용하는 것을 권하였다.

 

이에 덧붙여 이상미 강사는 강서50플러스센터 미싱 클래스는 정원이 12명으로 제한된데다 인기가 높기 때문에 미싱을 배우고자 하는 예비신청자는 강좌 모집 정보 등을 미리 파악하고 신청일에 광(光)클릭이 필수라고 귀띔하여 주었다.

 

■ 휴식 시간도 잊게 만드는 미싱 강좌의 열공 분위기

 

기자가 강서50플러스센터를 방문하여 미싱 중급 강좌를 참관한 2시간 내내 분주하면서도 진지한 실습 작업이 이어졌다. 이상미 강사와 10명의 수강생들은 1분 1초가 아까운지 쉴 틈 없이 설명과 실습과 질문, 답변으로 시간을 가득 채웠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딱딱하거나 무겁지는 않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지내 온 친자매 아니면 좀 나이 차이 나는 친척 언니, 동생 사이인 것처럼 서로 스스럼없이 가르쳐 주고 도와주곤 하였다.

 

방문한 날의 작업 주제는 ‘스트링 파우치’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는 끈 달린 주머니 종류를 말한다. 먼저 도착한 이 강사는 칠판에 오늘의 실습 요령을 적어가며 설명한다. 중급반이기 때문에 이미 강의 방식과 작업 순서에 익숙한 수강생들은 칠판 바로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어 이상미 강사의 설명을 꼼꼼히 듣는다. 그다음은 강사가 준비해온 옷감 뭉치를 하나씩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작품을 구상하여 재단을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은 미싱에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은 듯 시작부터 강사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미싱에 실을 거는데 이상하게 엉켜서 잘 안 빠져요.” 그러면 이 강사는 바지런히 그 실습 테이블에 다가가서 능숙하게 문제를 해결하고는 수강자에게 다시 한번 설명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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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와 실습에 열중하는 수강생들. ⓒ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수강생들은 각자 생각하고 있는 파우치 용도에 따라 옷감에 선을 그은 다음 가위로 재단을 하고 잘 맞추어 미싱질을 하게 된다. 어떤 이는 핸드폰 파우치를, 다른 이는 도시락 주머니를, 또 다른 수강생은 책가방을 생각하면서 작품들을 각자 만들어 간다.

 

수강생 중 한 명인 M씨(54)가 바쁜 작업 중에도 고맙게 대화에 응해 주어서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M씨는 예전부터 미싱을 배울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데, 강서50플러스센터의 강좌가 자신의 생활과 시간도 잘 맞고 가까워서 신청하게 됐다고 한다. 특히, M씨는 나중에 직장 관계가 정리되면 귀촌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미싱 같은 생활 기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시골에 가서 지내려면 집안에서 필요한 앞치마, 보자기, 작은 커튼, 주머니, 베갯잇 등의 생활 소품들은 내가 직접 개성 있게 만들어 사용해야 제격이 아니겠는가!

 

M씨는 또한 요즘은 옛날처럼 좋은 옷을 오랫동안 잘 간직하고 수선해서 입는 것이 아니라 (소위 SPA 브랜드로 대표되는 것처럼) 적당한 가격의 상품을 사 입고, 유행이 변하면 부담 없이 버리고 새 상품을 사서 쓰는 패션 세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였다. “그런 생활 습관들이 당연한 것처럼 번지니까, 결국은 환경오염을 악화시키고 온실가스도 돌이키기 힘든 수준으로 배출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요즘의 소비행태에 따르는 문제점에 대하여 뚜렷한 주관을 얘기하기도 하였다.

 

한편, M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여름이면 직접 미싱을 돌려 아버지의 모시옷을 만들어 주시고는 하셨다”라면서 개인적인 추억과 수강 동기에 대해서 말해 주기도 했다. 이제는 자신의 자녀에게 모시 덮개나 조각보를 만들어 줄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나곤 한다며 그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미싱 작업이 취미로서 집중력을 높여 주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고 하면서, 혹시 옷감을 박음질하다가 노루발 사이의 바늘에 다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미싱기는 생각보다 안전하게 고안이 된 기계라서, 초급부터 중급까지의 수강 과정에서 다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강서50플러스센터에서 다른 일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미싱 클래스에 참여하게 된 L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L씨는 수강생 중 가장 연장자이기도 하다.) “우리 나이에는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미싱 강좌를 듣고 실습하면서 할 일이 많아져서 좋다”라면서 미싱 작업의 매력에 대해서 반복하여 말하였다. “이 강좌에서 배운 것을 요긴하게 활용해서 베갯잇을 5개 만들어 보았는데,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예쁘고 튼튼해서 가족들이 너무 좋아한다”라고도 하였다. 게다가 전시회에 참여하거나 플리마켓에 내놓으면 일거리가 작품이 되는 것 같아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 50플러스 세대, 누구라도 시도해 보시길

 

다시 한번 느낀 것이지만, 강서50플러스센터 미싱 강좌는 분위기가 부러울 정도이다. 최신식으로 잘 갖추어진 실습 환경에 참여자 모두가 적극적이다. 특히, 이상미 강사에 대해서는 수강생들이 공통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면학(?) 분위기를 잘 이끌고 궁금한 점을 직접 잘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즐거움을 유발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사실 강의 특성상 좁지 않은 실습실에서 여기저기 작업 테이블로 직접 다니면서 가르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적잖이 힘이 들 텐데도 말이다.

 

강서50플러스센터의 미싱 중급반은 중간 휴식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금까지 기자가 본 어떤 강좌보다도 활기차고 알차 보였다. 그래서 오늘도 강서50플러스센터의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세월은 흘러 고단함보다는 사랑과 보람을 품고서 말이다.

 

 

50+시민기자단 박동원 기자 (parkdongwon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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