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앎과 모름의 모순
예부터 지배계급이 지배를 강화하고 피지배계급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한 수단은 많았다. 칼과 총 같은 물리적 유형의 도구는 물론이거니와 무형의 도구도 있다. 지식과 정보, ‘아는 것이 힘’. 지배를 정당화, 공고히하고 우민화와 순응을 조장하는 수단.
무형의 지식과 정보를 유형화한 대표적 결정체 중 하나가 ‘지식의 보고’라고 일컫는 ‘책’이다. ‘지식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 그러나 지식, 책은 자체가 모순이다. 사람을 지혜롭게도 어리석게도 만들고, 지배를 위한 수단도 저항의 수단도 된다. 모순의 적대적 해결, 분서갱유(焚書坑儒). 비적대적 해결, 백가쟁명(百家爭鳴).
금서(禁書), 이(利)인가 해(害)인가?
해서 억누르려는 자는 지식을 통제했고, 벗어나려는 자는 지식을 알고 퍼트리고자 했다. 책을 못 읽게 막는 것, 금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는 이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도 금서의 시대가 많이 있었다. 특히 7080시절. 사회과학서적뿐 아니라 시, 소설에 이르기까지의 엄청난 금서 목록은 돌이켜 보면 실소만 일뿐.
‘공산당선언’ 막스엥겔스를 넘어 한국 지식인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와 ‘민중과 지식인’에 이르면 실소, 신동엽의 시를 비롯해 소설류에 이르면 냉소.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소설에 이르면 썩소? “노동자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금서를 읽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왜 그런 짓을 하는 거니?
“진실을 알고 싶어서요”, 진실. 어머니의 물음에 빠샤는 답한다. 체제의 억압과 현실의 거짓에 대항하는 그 많은 젊은이들. 위험에 빠지고 사랑을 잃고 가족을 떠나는 모든 이들의 아들과 딸에게 묻는, 모든 어머니들의 물음이었으리.
그 단순한 물음. 불안과 걱정, 그리고 사랑. 거짓에 의문을 갖고 현실에 눈 뜨고. 사고와 의식, 행동. 마침내 다가선 진실. 한 젊은이의 어머니는 모든 아들과 딸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 어머니는 바로 우리 모두의 어머니. 진실, 어머니 그 존재 자체가 진실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차르 체제의 러시아. 지배하려는 자들의 억압과 탄압은 정점에 이르렀고, 지배받는 자들의 고통 역시 극에 달한 상황. 현실의 고됨과 배고픔보다 더한 아픔은 변화가 없는 삶. 단지 그들이 모르고 있을 뿐. ‘삶이란 항상 그러했다. 해가 거듭되어도 삶은 마치 더럽고 탁한 개울물이 흐르듯 그렇게 단조롭게 흘러갔다. 어느덧 이미 오래전에 몸에 배어 버린 습관이 그렇듯, 똑 같은 생각의 반복이 모든 일의 운명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와 같은 상태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여느 노동자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열쇠공, 남겨진 아내 뻴라게야와 아들 빠벨. 남편의 손찌검과 복종에 길들여진 아내와 ‘노동자의 삶은 어디를 가나 별다른 차이가 없음이 명백’함을 알고 있던 아들. 어느 순간, 아들이 ‘술 마시고 폴카도 배우고 야회에도 나가는 여는 젊은이들의 생활과 다른, 어두운 삶의 급류로 흘러 들어가고 있음을 눈치챘을 때 그녀의 마음 속엔 까닭 모를 두려움이 느껴졌다’. 빠벨의 변화를 알게 되면서 ‘알지 못할 상념들과 더해가는 불안으로 일관되는 침묵의 세월’.
현실의 고통보다 힘든 것은 변화 없는 삶
어머니의 불안과 관심에서 시작된 아들과의 대화는 사랑으로 자부심으로 서서히 바뀌어 갔지만 어머니의 마음 속 깊은 곳엔 항상 의문이 따랐다. “얘야, 너 혼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니?” 모르는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 오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계속되는 만남. 어머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아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아들과 동지들의 사고와 행동을 보며 변화의 두려움을 떨친 어머니.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치고 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랑도 있다’는 진실. 그 진실 앞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길을 막지 않고 함께 한다. 자식을 위해 자식의 길을 따라 나선, 변화를 택한 어머니. 정녕 현실의, 삶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 누구일까?
진리를 잡아 처넣지는 못할 테니까
빠벨과 동료들은 체포되고 어머니는 아들의 가장 믿음직한 동료로 투사로 거듭난다. 불온 서적과 유인물을 나르고 배포하며 남편 앞에서 벌벌 떨던 한 여성은 헌병 앞에서도 당당한 여성으로, 한 젊은이의 어머니는 모든 이의 어머니로 다시 선다. 모두가 자식이요, 모두의 어머니가 된 변화 앞에서 진실 역시 모두에게로 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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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쳐 대며 각자의 가슴이 자신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겁니다. 모든 노래가 마치 시냇물처럼 내달려 하나의 강물이 되고 그 강물이 다시 새로운 삶을 노래하는 환희의 바다로 넓고 자유롭게 흘러 들어가는 바로 그날은 오고야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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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세상에서 혼자 몸이 아니고 또 진리를 전부 잡아 처넣지는 못할 테니까’라는 믿음 앞에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설 곳을 잃는다. 진실을 마주한 사람들은 현실의 부정(不正)함에 망설이지 않는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 진실은 도망가지 못한다.
리얼리즘? 아니 삶
막심 고리키는 러시아 리얼리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자라고 한다. ‘어머니’ 역시 러시아 문학의 이정표이자 유럽 프롤레타리아에게 상용참고서로 통한다. 고리키 자신도 현실의 부정을 알기에 혁명에 몸담았다. 그러기에 그의 삶이 투사된 ‘어머니’란 소설 역시 현실을 묘사한 리얼리즘의 결과물이 아닌 바로 현실. 삶의 사실적 묘사가 아닌, 삶 그 자체.
‘삶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그 때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을 인간에게 제시’해 주기에 고리키 역시 자신의, 러시아 노동자의 현실과 삶을 ‘어머니’에 담았다. 이로써 소설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보편적 존재의 성장을 통해 억압받는 민중의 성장과 깨우침을 투영한 성장소설이 된다.
어머니라는 이름만큼이나 인간에게 가깝게 다가서는, 다가설 수 있는 존재가 또 있을까? 빠샤는 말한다, “어머니, 절 사랑하신다면 제 길을 막지 말아 주세요”, “마음대로 하거라. 난 말리지 않겠다”. 이 세상 그 누가 사랑하는 이가 가시밭길을 택했을 때 막지 않을까?
모든 어머니의 눈물은 마르지 않아
어머니 없는 사람은 없기에 어머니의 존재가 갖는 의미가 크게 다가오지 않는가? 그렇기에 ‘어머니를 동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는 말 역시 다가오지 않는가? 평생 자식을 보다듬으며 이끌지만 종국에는 따르는 어머니이기에 어머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자기 자신이 누구에겐가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어머니이기에 ‘인간으로 태어나 어머니를 정신적인 동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행복’인 것이다.
자식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어머니의 눈물은 평생 마르지 않지만 그 눈물을 닦아 주는 이 역시 자식이기에 어머니와 자식은 ‘가슴을 가슴으로 믿어 주는’ 관계인 것이다. 비록 현실의 벽이 두껍고 넘어서야 할 벽이 있다고 해도, 좌절과 시련이 앞을 막아 선다고 해도 어머니는 말한다. “곧 날이 밝겠구나. 아침에 나가려면 좀 자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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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지금 우리를 부당하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또한 삶의 괴로운 의미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그때를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을 인간에게 제시해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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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삶뿐이랴, 어머니의 존재 자체가 그러한 것을... 강함이 아닌 부드러움으로,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삶과 진실을 찾게 해주는 존재 어머니. 비록 ‘진리(진실)와는 어느 누구도 논쟁을 벌일 수’는 없다지만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진실도 있다. 바로 어머니.
어머니
지은이: 막심 고리키(러시아, 1868~1936)
옮긴이: 최윤락, 펴낸이: 열린책들(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