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토). 약속 장소인 도봉산역에 내리니 내 또래 50~60세대들이 우르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배낭을 메고 등산복 차림으로 산을 향해 걷는 게 보였다.
여기도 불광동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며 환승 센터를 찾아가니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바로 서부캠퍼스의 '주거' 대표 강좌인 <50+공동체주거> 4기 멤버들과 이 팀을 이끌고 있는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의 손웅익, 김수동, 윤장래 강사님들^^.
오늘은 서부캠퍼스 교육실이 아닌, 직접 '현장'을 탐방하며 공동체주거를 배우는 날이다.
환승센터 옆으로 난 골목길을 잠깐 걸으니 도봉산과 파란 가을 하늘이 가슴 가득 들어왔다. 살짝 들뜬 마음으로 이런 곳에서 산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무렵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공동체 주거의 형태는 쉐어하우스와 코하우징이 있는데 이 날 방문한 은혜공동체는 쉐어하우스다. 코하우징은 전용공간을 극대화하고 공유공간을 줄인다면,
쉐어하우스는 전용공간을 줄이고 공유공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구성원 간의 관계의 밀도에서 차이가 난다.
은혜공동체 이사장인 박민수 목사님과 만나 이 집의 탄생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은혜공동체의 경우는 처음엔 교회로 시작했으나 종교적인 색채보다
"공동체"가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했다. 첫 구상은 쉐어하우스는 아니었으나 진행과정에서 바뀌었고, 살아보니 이런 관계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165평 대지에 총 45억 건축비. 48명, 15가족의 거주자. 평균치를 따지자면 1인당 1억이 될까 말까 하다.
전체 집의 소유권은 조합에 있고 일종의 전세 개념의 입주인데 전체 금액의 1/3은 1/n로 나누고, 나머지 1/3은 소득분위로, 또 1/3은 차지한 면적 단위로 하기 때문에
싱글인 경우 1억 5백을 내고 들어온 사람도 있고, 5천을 내고 들어온 경우도 있다 한다.
입주 1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2개 조로 나뉘어 구체적인 탐방이 시작되었다. 3개층+다락과 옥상, 지하로 구성되어 있고 각 층엔 또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스플릿계단(반층) 형태로 각 공간마다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휴양지 호텔 분위기거나, 아이 없는 부부 공간엔 술을 마실 수 있는 바와 영화 빔 프로젝트가 있는 콘셉트이고, 어린아이가 많은 세대가 모여 있는 곳은 도서관 분위기다.
젊은 싱글 여성이 많은 공간엔 북 카페와 파우더 룸이 있다. 재택 근무공간도 따로 있고, 옥상엔 스파와 바비큐 파티장, 1층 대화실이나 게스트하우스, 또 지하의 음악실도 눈에 띄는
구성이다. 총 21개의 공유 공간이 있다.
각 층마다 있는 공동 주방의 경우 좀 작지 않나 질문을 하니 지하에 큰 식당이 있고 평일엔 거기에서 대개의 식사가 이루어지는데(인건비 때문에 한 끼에 5천 원)
각 층에서도 개인이 원하면 조리와 식사가 가능하다 한다. 맞벌이 부부들의 환영을 받을 만하다.
개인 공간이 좀 작지만 최대한 창을 크게 내어 주변의 자연을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대신 창호는 좀 비싼 것을 선택해서 단열에 신경 썼더니 별문제는 없다고 한다.
탐방이 끝나고 식당에 모여 더함플러스협동조합에서 준비한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탐방자들의 흥분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높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좋다는 것. 탐방을 시작하기 전 생각 했던 여러 우려들은 있었지만 함께 산다는 것이 주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들이 많았다.
좋은 이웃의 조건으로 ‘튼튼한 담’을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의 거리 두기에 대척점에 있는 신선한 공간 체험이었기 때문이다.
식사 후 다시 이어진 박민수 은공 이사장님과의 질의응답시간.
Q. 입지가 너무 좋아요. 어떻게 이 곳을 선정하게 되었나요?
아이들이 편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또 어른들도 주변 환경에서 쉴 수 있는 곳. 그러다 보니 산 밑 동네인
과천, 은평, 의정부, 도봉이 물망에 올랐고 투표를 해보니 의정부와 도봉이 동수였다. 결국 도봉을 선택했는데 여기 뒤쪽 소나무 숲이 결정적이었다.
토지 매입은 한 달 만에 이뤄졌다. 건축비가 불안요소 중 가장 컸고 여러 어려움이 있었으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Q. 사람이 모여 살다 보면 갈등이 없을 수 없다고 보는데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가 있나요?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말 중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가 아닌가 한다.
불교 역시도 비슷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여기 입주 조건에 종교적 지향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일요일 모임에 인문학 강의가 있는데 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열린다. 요즘 장자 강의를 듣고 있는데 함께 살 때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의식을 확장시켜
준다. 일상적인 노동인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일에 모두가 열심이다. 어느 한 사람의 고통을 안고 공동체의 행복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갈등을 최소화시키려면 공격적인
말이나 평가하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공격받으면 맘이 닫힌다. 공격하지 않으면서 내 맘이 힘든 것을 표현하는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관계가 인생의 근본이고 어느 시점부턴가 행복의 근원은 관계로부터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박민수 이사장님.
나는 쉐어하우스의 구조와 더불어 색다른 라이프 스타일에 탐방하는 내내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나와 타인과의 거리는 공간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 주거를 꿈꾸며 모여든 50플러스 세대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을 뻗어나가게 하는 멋진 체험이었다.
글·사진=임영라(50+모더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