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개관특강 네 번째 시간은
단국대 서민 교수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란 주제로 진행됐다.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서민 교수의 글쓰기 강의라니?
주제 자체가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서교수는 외모 콤플렉스를 벗어나려고 글쓰기를 시작했다며
본인을 한껏 낮추어 얘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강연은 250여장이 넘는 엄청난 숫자의 PPT 슬라이드가 쉴틈없이 사용돼
그의 성실함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시작부터 끝까지 특유의 겸손함은 물론 빵빵터지는 웃음까지 가득한 매력적인 시간이었다.
나이 들어 시작한 기생충 박사의 ‘글쓰기’
서교수는 나이가 들어서도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50+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50+캠퍼스의 개관특강이라는 말을 듣고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강연주제로 결정했다고 한다.
특히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글쓰기 덕분입니다. 여러분도 지금부터 3년 정도 훈련하면 5년 후에는 충분히 책을 쓸 수 있어요” 라며 희망찬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서교수는 어려서부터 못생긴 얼굴과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아 왔다. 물론 교수가 된 뒤에는 많은 것이 충족되었지만 외모로 인해 상처받은 자존감을 만회하고 싶었고, 그동안 부당하게 욕먹고 억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른살까지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바로 책을 장식용 소장품으로만 여기던 아버지가 책을 읽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란다. 읽지도 않던 책을 대뜸 쓰기까지 했으니 처음에는 ‘쓰레기 같은 책’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겠냐며 실제로 책을 내고 보니까 본인의 글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깨닫게 되었다고.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어 매일 2편씩 글을 쓰고, 자투리 시간에는 무조건 책을 읽는 자체 지옥훈련을 했다.
그렇다면 글을 쓰면 좋은 점은?
1. 전문가가 되는 지름길이다.
글을 쓰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전문가가 책을 낼 수도 있지만 책을 쓰면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는 것. 책을 쓰려면 참고문헌이나 자료도 찾아보고 더 공부하게 되면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그는 ‘똑게(똑똑하고 게으른)육아’ 라는 책을 예로 들었는데 아기를 키우던 평범한 주부가 잠을 자지 않는 아기를 잘 재우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쓰고 책으로 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러면서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2. 책을 쓰면 강연을 할 수도 있다.
책을 내면 강연 요청이 오기도 한다. 책 내용을 직접 들으려고 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 서교수 본인도 ‘서민적 글쓰기’라는 책을 낸 뒤에 글쓰기 강의를 하게 됐다. 김미경 강사, 김난도 교수, 강헌 작가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3.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
글은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시간과 장소까지 초월하여 나의 생각을 알릴 수 있는 것. 서교수는 “부모 말을 안 듣는 아이도 편지를 써서 설득하면 훨씬 쉽고 빠르게 알아들을 정도로 글의 영향력이 크다”며 ‘아침형 인간’ 이란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글쓰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1. 일단 목표를 정하자.
‘5년 내 저서를 내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또한 글 쓰는 테크닉(문장력)보다 컨텐츠가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고 자기의 고유한 이야기를 쓰자. 글을 읽고 ‘이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는 구나’ 하고 이해가 되는 정도면 되니 걸작을 목표로 삼지 말자.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이유는 걸작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2. 블로그를 만들자.
블로그는 개인이 글을 써 누적하기에 가장 좋은 매체이다. 블로그를 만들고 그곳에 최소한 2년은 글쓰기를 연습한다. 댓글이 있으면 좋지만 댓글 숫자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상처도 받지 마라.
3. 일기를 쓴다.
매일 매일 쓴다. 하루에 A4용지 1매 정도 분량을 쓴다고 생각하고 매일 쓴다. 그날 있었던 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주제로 하며 가능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쓰도록 한다.
사진은 보조적인 도구로 사용하도록 하며 사진 위주로 글을 쓰면 안 된다. 좋은 글은 장면이 떠올라야 하고, 그 장면은 독자마다 다를 수 있어야 한다.
4. 글쓰기 노트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글감은 떠올랐다가도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곧바로 적어 놓지 않으면 다시 떠올리기 힘들다. 따라서 항상 노트와 펜을 가지고 다니다가 글감이 있으면 간단한 얼개를 써놓고 이것을 나중에 블로그로 옮기면 된다. 노트를 가지고 다니다보면 우리 삶이 글을 쓸 소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5. 사막에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가 생각한 바를 남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자. 몇 달이 지난 후 자신이 쓴 글이 유치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바로 글이 나아진 것이다.
글쓰기 기법에 관하여
1. 쉽게 쓰자.
글은 상대(독자)를 설득하는 수단이다. 당연히 알아듣기 쉬운 말로 써야 한다. 글을 쉽게 쓰려면 말로 설명하듯이 쓰면 된다. 처음부터 말하듯이 글쓰는게 쉽지 않기 때문에 먼저 자기의 경험을 말로 녹음한 후 글로 옮겨 적는 방법도 말하듯이 글쓰는 연습에 도움이 된다.
2. 비유는 글의 이해를 돕는데 가장 좋은 무기이다.
부자가 천국에 갈 확률을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에 비유하는 것은 좋은 비유라 할 수 있지만 ‘장대같은 비, 앵두같은 입술’ 과 같은 진부한 비유는 오히려 글을 죽이기도 한다.
좋은 비유는 관찰에서 나오기 때문에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을 갖고 다양한 표현을 접할 수 있는 소설을 많이 읽으며 좋은 표현은 자신의 글쓰기 노트에 옮겨 적어 놓은 뒤 꾸준히 살펴보고 사용해본다.
3. 글은 시작이 중요하다.
글은 맨 첫 부분이 60%를 차지한다. 보통 글의 초반을 보고 전체를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므로 글의 초반에 흥미를 유발해야한다. 그렇다고 가장 감동적인 내용으로 시작해버리면 오히려 김을 빼버리는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4. 관점을 달리하면 재미있는 글이 나온다.
횟집에서 회를 먹는데 생선에서 기생충이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일반적으로는 먹으려던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쓰겠지만 반대로 기생충의 입장에서 글을 쓰면 훨씬 흥미로울 수도 있다.
「먹으려던 사람의 입장에서 쓴 글」
“횟집에서 회를 먹으려던 A양은 깜짝 놀랐다. 회에서 기생충 한 마리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꺄악!” 잠시 후 주인이 황급히 달려왔다. “너희들 다 고소할 거야!”
「관점을 달리하여 기생충의 입장에서 쓴 글」
“내가 이러려고 기생충으로 태어났는지 자괴감이 든다. ”필로메트라 (이하 필로)는 억울했다. 물고기 안에 있을 때, 필로는 마냥 행복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한 톨의 식량과 잠자리가 전부였으니까. 필로는 이런 삶이 계속되리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필로는 밝은 곳에 내동댕이쳐진다.
5. 자기 경험을 얘기하자.
자신만의 경험은 글의 고유성이 된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고유한 글을 쓸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예를 들면 ‘된장찌개’에 대한 글을 쓴다고 치면 8살짜리-중학생-50세가 쓰는 글은 각각 차원이 다르다는 것.
우리나라 드라마는 교통사고, 기억 상실,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도 일부 능력을 잃을 뿐 보통 자기 이름이나 가족 구성원, 출신학교 등과 같은 기본적인 사실은 기억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태를 반영한다는 드라마에 이렇게 현실과는 거리가 먼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자극적인 소재를 원하는 소위 막장 드라마의 특성도 있겠지만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경험치를 갖지 못하거나 그 경험을 소재로 잘 녹여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6. 책을 읽자.
하지만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은 시간적,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주제에 대해 다 경험할 수는 없는 것. 하지만 책에서 읽은 간접경험도 좋은 글감이 될 수 있고 남이 쓴 책을 읽다 보면 글에 대한 눈이 길러져 글을 잘 쓰기도 쉽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만 책을 읽어도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으니 버릇처럼 꾸준히 독서를 하자.
7. 교정은 필수다.
글을 출력해서 확인하면 안보이던 고칠 부분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소리 내어 읽어보면 더 좋다. 사람들은 뭔가를 배우기 위해 글을 읽는데 기본적인 맞춤법부터 틀렸다면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글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그 글에서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책을 쓰려면
책을 쓰겠다는 목표를 가졌다면 “무엇을 쓸 것인가?”를 먼저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주제에 대한 25개 내지 30개 정도의 꼭지를 정리하고 각 꼭지에 대한 참고문헌을 찾아보면서 글을 쓰자. 참고문헌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연과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또한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경우 그것을 모아서 책으로 내겠다는 경우도 있는데 블로그 글은 주제, 분량, 수준 등에 대한 통일성이 없어서 글이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에 단순히 꾸준히 쓴 것을 모아 책으로 내는 것은 좋지 않다.
서교수는 연재한 글을 책으로 내는 것을 권장했다. 연재한 글은 수준 차이가 크지 않고 특정한 주제가 있으며 매번 최선을 다해 쓴 글이기 때문이다. 서교수는 본인의 경우 글 쓴지 16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베스트셀러를 썼다고 했다. 그 후로는 판매부수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썼고 강연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강의가 끝난 후 학자로서 논문과 같은 아카데믹한 글쓰기와 베스트셀러를 쓸 때의 글쓰기에 있어 차이가 있는지 질문을 받은 서교수는 학술서를 쓰는 것과 대중서를 쓰는 것은 근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논문 또한 자기가 발견한 바에 대해 자랑하는 글이기 때문에 글쓰기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예전에는 논문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논문도 잘 쓰게 되었다며 글쓰기를 연습하면 모든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글쓰기와 관련한 책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 서교수는 윌리암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소개했다.
서교수는 강연을 마치며 청중들에게 5년 후에는 서로 저자가 되어 만나자고 했다.
2시간 내내 유머와 재치를 곁들여 비유와 사례를 중심으로 한 강의는 객석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했고
특유의 소박함과 겸손이 배어있는 태도는 ‘서민’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강단에 올라있는 강사임에도 말할 수 없는 친근함을 느끼게 했다.
특유의 구부정한 자세마저도...
글/ 이계복 50+모더레이터 · 사진/ 바라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