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로 떠나는 역사 기행
「고개를 드니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나는 지금 발트해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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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즐기는 것! 더해서 상상한 것만큼 느끼는 것.
슬라브 지역 여행가인 김상현 강사의 「발트해로 떠나는 역사 기행」강좌는 6주간 진행되었으며, 기자는 마지막 수업인 6주 차 강의를 참관하였다. 여행이란 단어는 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요즘처럼 코로나 시기엔 더욱 그렇다. 떠나질 못하니 대리 만족으로라도 여행 프로그램이 있으면 만사 제쳐놓고 시청을 하는 편이다. 특히 가보려고 했던 여행지가 나오면 이유 불문이지. 내겐 발트 3국이 그랬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아쉬움이 컸지만, 화면으로 만나는 그림과 설명 하나하나가 눈과 귀를 쫑긋하게 했다. 온라인으로 만난 수강생들의 화면 표정도 진지하다.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북유럽과 연결되는 지역에 위치한 발트 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은 ‘여행 호사가들의 마지막 선택지’라는 말이 있을만큼 매력이 있는 나라로 불린다. 그런데 6회에 담긴 강의 커리큘럼을 보니 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내용이 3회에 걸쳐 담겨 있었다. ‘과연 이 도시는 발트 3국과 어떤 역사적 배경을 함께 하고 있을까?’ 문득 이 지역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는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가 그 나라를 다녀왔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여행, 역사를 알면 여행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아마도 강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이야기하지 않고서 발트 3국을 함께 말할 수 없음을 전하고 싶었을까? 그 답은 강의가 끝난 후에 풀릴 수 있을까? 6회의 강의 중 한 회를 듣고 쓰는 참관기, E.H.Carr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말이 생뚱맞게 떠오른다.
이날 6주 차 수업의 제목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음악과 에스토니아 여행이었다.인트로는 차이콥스키의 발레 작품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로 아름답게 시작되었다. 필자가 달콤한 여행의 환상 속으로 빠지기 시작할 즈음, 이후 전개되는 독일군의 소련 점령 이야기는 잔혹사 그 자체였다. 보급로가 끊긴 소련의 공동체가 완전히 무너지고, 먹을 것이 없어 인육을 먹고 파는 상점까지 생겼다는 이야기는 처참함과 암울의 극치다. 유대인 “안네의 일기”와 같은 “타냐사비체바의 일기”는 가족 모두의 죽음이 시간별로 기록되면서 “모두 죽었다. 타냐만 혼자 남았다”라는 것으로 이어진다. 결국은 그녀도 영양 장애로 죽게 된다. 전쟁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1942년 비장함과 장엄함이 넘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1시간 15분의 연주가 시작된 그날, 봉쇄된 도시 레닌그라드는 모든 전기를 차단하고 연주 홀에만 전기를 공급했으며, 공중은 항공기가 비행하며 적을 방어하고 확성기로 적군인 독일군을 향해 음악을 내보낸다. 마치 “우리는 살아있어. 절대로 죽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적에게 전하듯. 그해 겨울 호수가 얼면서 보급로가 뚫리고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됨으로써 소련은 마침내 이 전쟁이 주었던 암흑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강사가 음악과 함께 설명한 독일과 소련의 긴 전쟁사는 결국, 오랜 기간 소련 및 주변국의 지배를 받은 발트 3국이 그와 인접한 도시인 소련의 항만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문화적 교류와 영향을 서로 받을 수밖에 없음을 말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시간의 어두운 분위기는 두 번째 시간의 아름다운 사진들로 반전된다. 내가 기대하고 보고 싶었던 그림들이다. 북방의 베니스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운하는 365개의 다리로 연결 됐다고 하며, 가히 그 규모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작지만 아름다웠던 파리 세느강의 예쁜 다리들과 이탈리아 베니스의 물길이 오버랩 되었다. 강사는 현재 시의회 건물인 마린스키 궁전과 음악의 도시답게 마린스키 극장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러시아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 무소르그스키, 차이콥스키, 루빈스타인, 미하일 글린카 등의 최상의 연주곡을 그것도 VIP석에서 120,000원에 들을 수 있다며, 이곳 여행 시 반드시 관람할 것을 추천했다. 발레리나인 마틸다 크세신스카야의 이야기(파리로 이주, 1929년 발레 학교를 세우고 세계적 발레리나들을 배출하고 99세에 사망한 마틸다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한 번쯤 검색해 알아보시라)를 끝으로 강의는 발트 3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얘기로 넘어간다.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본 탈린의 구시가지
강사는 항공, 고속버스, 또는 배편 등 어떠한 교통편을 이용해서든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탈린을 꼭 방문하여야 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톰페아 언덕에서 본 탈린시의 아름다움, 도스토옙스키가 머문 집, 표트르 대제가 그의 두 번째 부인 예카테리나 1세를 위해 조성했다는 카드리오르그 공원과 궁전 또한 반드시 방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곳에는 에스토니아 민족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리드리히 라이홀트 크레우츠 발드(‘칼레프의 아들’ 저자)의 동상이 있다. 카드리오르그 궁전의 정원 사진을 보니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한 정원이 떠오른다. ‘유럽 정원의 양식들이 서로 전해지고 교류된 것이겠지’ 하고 짐짓 아는 척을 해본다.
탈린 버스터미널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리가,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출발지이다. 조식을 해결할 여행객들은 오전 7:30 분에서 10시까지 간단한 식사가 가능한 매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친절한 팁도 알려준다. 탈린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겨울 고속도로 주변의 사진은 닥터 지바고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에스토니아는 인구가 150만 정도인데 탈린시의 인구가 그 절반인 70만이다. 탈린 구시가의 아름다운 도시 풍경, 탑과 성, 톰에게야 언덕에서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의 예쁜 카페들, 두 번째로 큰 도시, 문화와 역사의 중심도시이자 대학 도시라는 타르투의 ‘키스하는 학생’ 조각상과 분수, 타르투대학교의 꼭대기 층에는 대학 감옥이 있는데, 그 당시의 교칙(흡연은 2일/도서 미납이나 여자희롱은 4~5일/심한 욕을 하거나 싸우면 3주간 감금)이 참 흥미롭다. 대학 안의 천사의 다리, 악마의 다리도 인상적이었는데 실제 천사의 다리는 밝은 색상, 악마의 다리는 어두운 색상으로 되어 있어 이름과 걸맞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은 천사의 다리 반대편에 세워져 있어 붙여진 상대적 이름이라고 한다. 기억나는 글이 있다. 목재 기둥교식 보행교인 천사의 다리 후면에 새겨진 “휴식이 능력을 새롭게 한다.” 얼마나 멋들어진 명언인가! 이쯤 되면 나는 말과 글이 역사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
어느 강의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여행 강의는 늘 끝 시간의 아쉬움이 크다. 강사는 좀 더 많은 내용을 충실히 전하지 못한 욕심이 들고 수강생은 좀 더 많은 것들을 더 들었으면 하는 허기짐이 드는 것. 이제 나의 발트해로 떠난 역사 기행 참관기도 정리할 시간이 된 듯하다. 마지막 강의를 듣고 6회에 걸친 강좌의 참관기를 쓴다는 것이 부족함을 전제하고 있지만, 수강생들의 강의 후담으로 아쉬움을 정리해 본다.
대부분 수강생이 “강의에 감사드리며 6회에 걸친 강의를 흥미롭게 들을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고, 발트 3국은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가본 곳이어서 더욱 관심이 있었다.”라는 종강 소감이 있었다. 그중 메모에 남은 수강생 몇 분의 이야기를 적어 본다.
이상미 님: 발트 3국과 러시아 여행 흥미 있게 잘 들었습니다. 강사님께 감사드리고요. 언어도 그렇고 자유여행은 좀 부담스러운데 나중에 강사님이 인솔자가 되어 수업을 함께 들으신 분들과 단체여행을 하면 좋겠습니다.
윤혜주 님: 강의에 감사 드리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국제 업무라 출장 겸 이곳저곳 많이 다닐 기회가 있었는데 발트 3국엔 가보지 못했네요. 여행가들에게 있어 여행의 마지막 선택지라고 하던데 말 그대로 아름다운 곳이었으며, 역사와 함께하는 강좌여서 더욱 흥미롭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영어로도 소통이 가능한 곳인지 알고 싶어요.
허정남 님: 여행지로 관심이 가는 지역이었는데 특별히 러시아와 발트 3국의 역사와 예술, 문화를 연결시켜 강의를 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김덕영 님: 다소 생소한 지역인 발트 3국과 소련, 동유럽 등과의 역사적 관계와 배경을 이해하고 그 지역의 인문학적 지식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속 강의 기대하고요, 감사합니다.
홍순철 님: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칼린그라드의 유래를 알게 되어 더욱 좋았습니다. 강의 감사 드립니다.
김상현 강사님: 발트 3국은 많은 젊은이들이 영어를 잘해 영어로도 소통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칸트의 데드마스크”라는 후속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데 칼린그라드의 이야기도 강의 내용에 많이 담기게 될 겁니다. 관심 많이 가져 주시고요. 단톡방 개설되어 있으니 지속적으로 소통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수업 흥미롭게 들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고맙습니다.
두 시간의 6회차 마지막 강의는 끝났지만, 발트해는 좀 더 가까이 내게 다가왔다. 모두 자유롭게 그리고 함께 떠날 수 있는 시간이 빠르게 오길 기대해 본다.
사족으로, 온라인 강의여서 수업 중 찍은 컴퓨터의 흐릿한 화면 사진과 발트 3국을 다녀온 아들이 찍은 몇 장의 사진을 올립니다. 발트 3국에 흥미를 갖고 이 강좌를 수강한 후 강의 분위기를 전해준 역사에 해박한 친구 홍순철 님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50+시민기자단 안종익 기자 (try37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