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를 쓰고 전기를 아껴 쓴다고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뭔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 같은데,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요즘 부쩍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기후변화가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54일간의 장마로,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5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번 겨울은 -20℃ 가까운 한파 다음날 봄날같이 온도가 올라가는 등 들쑥날쑥하였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인간 경제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에 있다. 우리가 석유, 석탄, 가스와 같은 화석에너지를 태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 평균기온을 올리면서 발생한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7월, 그린 뉴딜을 발표했다.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위해 2025년까지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전환, 분산에너지 확대, 녹색산업 활성화에 73조 4,000억 원을 투자, 65만 9,00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산업을 키워 녹색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
정부는 임대주택 22만 5천 호, 국공립 어린이집, 보건소와 의료시설 2,000여 동, 문화시설 1,000여 개 등 공공건물의 단열을 개선하는 그린 리모델링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건물 단열개선사업에 건물 자재, 시공, 감리 등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오래된 학교건물 2,890동도 그린 리모델링을 한다. 환경부는 전국의 25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그린스마트도시 공모사업도 진행했다. 재생가능에너지 설비를 늘리고, 2025년까지 전기차 113만 대, 수소차 20만 대, 전기차 충전기는 1만 5,000대(급속), 수소 충전소는 450개소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처럼 건물·에너지·수송 분야에서 녹색산업을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그린 뉴딜은 규모가 작고, 대기업 지원 중심이라는 비판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녹색산업 관련 일자리를 만들기에는 예산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연간 600조 정도의 예산을 그린 뉴딜에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 뉴딜이 지역의 일자리로 연결되려면
정부가 그린 뉴딜로 만들겠다는 65만 9,000개의 일자리도 시민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숫자이다.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체감할 수 있는 녹색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지역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고,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일자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온실가스를 줄이는 활동이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되려면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정부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행위를 강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은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야만 한다. 둘째, 에너지와 자원에 대한 가치나 비용을 높게 책정해 효율을 높이고, 재사용·재활용하는 일에 사람과 기술이 투입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데는 정부의 지원금도 필요하지만 이 일이 지속되게 하려면 ‘제도 개선’이 먼저다.
서울에서 그린 뉴딜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
2020년 7월 8일, 서울시도 그린 뉴딜 정책이 발표되었다. 2022년까지 2조 6,000억 원을 투입해 건물, 수송, 도시 숲,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 등 5대 분야에서 온실가스를 줄여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다. 2021년 4월 보궐선거로 당선한 서울시장이 그린 뉴딜 정책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미지수이지만 서울시 차원에서 그린 뉴딜에 대한 정책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시민들이 필요한 것은 폭염과 한파를 견디는 안전한 집, 편리한 공공교통과 폐기물을 만들지 않는 자원순환, 집 근처에서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공원이다. 그린 뉴딜을 추진하는 자치구에서는 이상기후 재난에 대비해 도시 인프라를 개선하고, 새로 짓거나 노후화된 건물은 에너지 제로(0) 건물로 그린 리모델링하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교육을 하고, 공원을 늘리고,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는 시민들도 재난에 대비해서 안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시대에는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하는 시민들에게 인건비를 지불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서울시 정책을 연계해 서울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그린 뉴딜 일자리는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다.
노후주택 그린 리모델링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재임한 이후 첫 번째로 한 사업이 저소득층의 집수리 단열개선 사업이다. 총 50억 달러(5조 6,000억 원)를 투입해 3년 동안 1백만 가구를 수리하였고, 온실가스를 감축시켰으며, 단기간에 많은 일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보조사업비 1달러 투입 당 에너지편익은 1.72달러, 비에너지 편익은 2.78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발생시켰다.
불볕더위와 한파가 점점 심해질수록 에너지 비용이 더 드는데, 이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노후주택 리모델링은 기후위기 적응 사업으로도 펼칠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집수리사업단을 통한 ‘서울가꿈주택사업’1을 펼치고 있다. 2020년 8월까지 약 1,600여 가구를 시공한 결과 주택의 에너지성능이 약 30~40%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에 노후주택 1만 동을 단열 개선하면 예산은 약 700억 원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1,500억 원 규모의 시장이 만들어지고 일자리와 골목상권 활성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치구 또는 동 단위로 인적자원(동네 설비업체, 집수리 사업, 설비제품 업체 등), 기술자원 등을 조사해, 지역 주민들이 노후주택 에너지 효율화를 진행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정책이기도 하다. 동작구 상도 3동 성대골에서는 설비 수리업체를 운영하는 마을기술자들과 주민들이 마을주택 단열개선 사업을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태양광발전 협동조합
서울시는 공공기관 지붕 햇빛펀드, 아파트 베란다 태양광 보급 사업을 열심히 추진해왔다. 서울의 재생가능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옥상임대 또는 건물주 태양광발전 모델, 10㎾ 소규모 태양광 확대 방안, 금융 상품화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는 모든 신축건물에 대해 태양광발전을 의무화했다. 서울에서는 약 20여 개의 태양광발전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 같은 제도가 도입되면 태양광발전 사업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심 주택과 공공건물, 상업 건물을 모아 수요반응(DR: Demand Response)사업,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를 연계한 전력중개 사업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계절별 시간대별로 전기요금제를 달리하면, 시민들은 값이 비싼 시간대에 전력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발전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 서대문구에서는 수요자원시장,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모아서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를 만들고, 이런 전력생산 또는 수요관리 자원을 하나로 모아서 전력시장에 판매하는 스마트에너지공동체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시민들이 도시에서 에너지서비스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모델인데, 이 사업이 활성화되려면 전력요금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폐기물관리와 자원순환
폐기물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규제 강화는 새로운 서비스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프랑스는 ‘음식물 낭비와의 전쟁 관련 법’을 시행해 슈퍼마켓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자선단체나 푸드뱅크에 기부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그 결과 버려지는 식재료가 줄어 온실가스 감축, 푸드뱅크를 통한 일자리 창출로 연결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일회용품 없는 축제를 만드는 스타트업 기업 ‘트래쉬 버스터즈’가 축제때 공유 식기를 대여-회수-세척·살균-재사용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나아가 지역사회 소비자와 공급자가 협력하여 재래시장이나 중소규모 상가에서 근거리 거주 소비자와 함께 1회용 포장용기를 다회용기로 전환하는 사업으로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성남자원순환가게 re100’2, ‘은평구 모아모아’3 등 주민참여 재활용·분리수거 모델이 확산하고 있고, 서울시 업사이클링 센터 구축 등 재활용 수집과 판매 분야 사회적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동네에서 재활용 수집과 판매에 대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이 만들어져 지역순환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전환센터와 기후에너지환경 교육
현재 그린 뉴딜 일자리로 현실성이 높은 분야는 기후교육 부문이다. 시민을 포함해 유치원, 초중고, 대학 특성에 맞는 기후 에너지 환경 교육과 생활 현장 적응력을 높이는 교육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생존을 위한 기후위기 대응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 마련, 전문 강사 양성, 예산을 지원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교육하고 실천하는 거점공간으로 전환센터가 만들어지면, 지역사회 정보와 관계망이 구축되고, 시민주도의 서비스가 창출될 수 있다. 전환센터는 시민들에게 조명, 냉ㆍ난방 기기 효율개선, 집수리 단열개선 사업, 태양광 설치에 대한 정보와 지원제도를 제공할 수 있다.
생태계 조사와 관리
공원과 녹색지대, 강 하천의 생태 복원, 지역의 생물다양성 조사와 보호 활동에 지역주민이 참여하고,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현재 서울의 샛강생태공원과 장항습지를 위탁 관리한다.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강 가꾸기, 생물다양성 보호, 생태계 조사는 사회적경제로서의 확장성이 높은 분야이다. 도시 근린공원, 소공원, 어린이 공원을 관리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시민의 공원 이용과 생태적 감수성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돌봄과 재난에 대한 안전
코로나 이후 여성의 돌봄 노동이 가중되고 있다. 기후위기와 고령화 대비, 재난에 취약한 장애인·어린이 돌봄 서비스를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확산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지역공동체가 폭염, 한파, 태풍, 홍수와 같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기후재난에 대비해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도 일자리가 될 수 있다. ‘마을재난학교’를 열어 재난대비 매뉴얼을 만들고 훈련하며, 방재공원, 방재놀이터, 방재캠핑장, 방재 키즈카페 등 주민참여 예산을 활용해 공간을 만들고 마을 재난 안전 인력을 고용해서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