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안기는 오페라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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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도 직업이 될 수 있기에
자신이 조금 알고 좋아하는 취미로 전문강사 되는 방법과 필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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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은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각색하여,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들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연출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백미이자 압권은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교도소 전역에 잔잔히 울려퍼지는 장면입니다. 오페라 아리아를 들어본 적도 없고, 가사를 이해하지도 못했던 죄수들 모두가 오래된 안내방송용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아리아 선율에서 일순간 마음의 자유로움과 교도소의 장벽이 무너지는 듯한 생경한 경험을 느끼게 됩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보마르셰의 희곡을 바탕으로 로렌초 다 폰테가 대본을 쓰고, 모짜르트가 작곡을 한 18세기 오페라이며, 영화 속 『저녁 산들바람이 부드럽게』라는 곡은 오페라 3막에 나오는 아름답고 깨끗한 여성 소프라노의 이중창 아리아(노래)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교도소와 유사한 현실의 장벽을 느끼며,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일들에 길들여지면서 생활합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울려 퍼졌던 아름다운 아리아와 같은 잠깐잠깐의 자유로움 속에서 언젠가 장벽을 걸어 나가 누리게 될 지속가능한 자유스러움을 상상하며 살아갑니다. 영화 속 앤디 듀프레인처럼요.
며칠 전, 그런 장벽을 걸어 나와 자유롭고 멋진 인생 이모작 시간을 만들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에서 『청바지 입고 오페라』 강의를 하는 한형철 강사였습니다. 인생 1막 25년을 시중은행에서 보낸 그는 “농사에서 이모작을 하려면 할 수 있는 한 뿌리까지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라고 말했고, “인생 이모작 시기인 50+는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50+ 세대였습니다. 단순히 취미로 듣던 오페라를 3년 전부터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니 『청바지 입고 오페라』 강의를 하게 되었고, 이어 컬럼 기고 요청이 들어와서 컬럼을 쓰게 되었고, 이번 달에는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이라는 책까지 출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강의나 책을 통해 보고 들을 수 있는 오페라에 대한 본원적인 이야기보다는 좋아하는 취미를 인생 이모작의 업으로 전환하고, 조금씩 더 공부하여 발전되는 기쁨의 시간을 만드는 과정과 노하우를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다른 50+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한형철 강사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먼저 하고 있는 관심사나 취미를 하나하나 적어서 정리한다.
관심사나 취미에 관해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글(콘텐츠)을 쌓아갑니다. 그러면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게 되고, 그러면서 기존에 쓴 글을 보강하고 정리합니다. 그런 다음에 파워포인트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가족들이나 지인들 앞에서 강의를 해봅니다. 강의를 하면서 포스팅했던 글을 조금씩 다듬습니다. 그게 쌓이면 책을 출판하는 식입니다.
한형철 강사의 예를 들면, 2017.1월, 시중은행 퇴직▶2017.8월, 동작50플러스센터에서 블로그 강의를 들으면서 개인 블로그에 여행 글과 사진을 포스팅▶2017.9월, 블로그 운영방안 간단히 구상▶2017.10월부터 오페라 글과 사진 포스팅▶2018.6월 책 출판 의뢰 및 계약▶2018.7월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에서 『청바지 입고 오페라』 첫 강의▶2019.10월 중앙일보에 “운동화 신고 오페라” 컬럼 연재▶2020.7월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 도서 출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직 후 약 3년간 40여 개의 오페라 콘텐츠가 올라와 있으니 1개월에 1~2개씩 차근차근 여유롭게 적고 정리한 것이 강좌 개설, 컬럼 연재, 도서 출판으로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한형철 작가의 저서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 (출처: 네이버 책)
2.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쌓아나가기 위해 약간씩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일이 더 재미있어집니다. 신변잡기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로 콘텐츠를 쌓으려면 내용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약간의 공부를 하면서 글을 써야 합니다. 예를 들면, 또 다른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는 열렬히 사랑하여 결혼까지 약속한 약혼녀들의 변심을 다룬 희극입니다. 「코지 판 투테」의 시대적 배경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구체제가 서서히 붕괴되면서 계몽사상이 들어와 왕권이 흔들리고 봉건제 폐지 및 농노해방과 여성 참정권 논의가 시작된 시기였다는 것과 오페라를 연결해보는 식입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색(色)의 유혹에 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파트너의 실수에 대한 관용을 가르치는 그 시대의 계몽적인 작품이라는 혹은 관용 대신 엄격하게 필벌해야 하는 현시대의 계몽적인 작품이라는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는 식입니다. 즉, 고전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해석을 던져주는가에 대한 ‘나와 우리의 이야기’로 전달해야 합니다.
3. 강의를 위해 기승전결에 대한 적절한 설명과 장면이 연출(준비)되어야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서 오페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오페라 강의는 차이는 즐기는 것과 본업의 차이입니다. 강의는 말만 많이 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기승전결의 이야기로 다듬어야 하는 것(story-making)이 강의인 것 같습니다. 한형철 강사 역시 “재야의 고수가 많지만, 절대 비교하며 주눅 들지 말고 본인이 잘하고 싶은 거를 만들어보고 자기 공간에 계속해서 쌓아놓으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게 강의를 잘하는 비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고수들처럼 몰라도 되고, 계속하다 보면 고수님들처럼 잘하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4. 처음부터 관심사나 취미에 대한 글쓰기가 부담되면, 먼저 많이 보고 들어야 합니다.
숲이나 미술처럼 오페라도 강사님의 각 막의 배경설명과 해설을 통해 극 흐름을 이해하고, 중요 아리아에 대한 해설과 그 시대상에 대한 해설을 들어서 해당 오페라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후 감상하면 오페라가 더욱 실감이 나며 감동적이게 됩니다. 이후 비싸지 않은 좌석으로 오페라 감상을 할 수 있는 팁도 배우고, 무대와 조명, 의상과 안무에 대한 설명도 듣고, 국립 오페라단의 오페라 영상도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에서도 언급한 새로운 문화로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을 경험하며 문화적 자존감을 고양해 갑니다.
50+ 세대는 형편에 맞게 씀씀이를 조절하고, 문화적 자존감으로 당당하게 살면서 명분 없이 시간을 보내지 않아야 합니다. 앉아서 대접받으려는 삶에 찌든 50+ 시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산만큼 쌓인 관심사와 취미를 자본 삼아 하루하루를 과거와는 색다른 경험으로 맞이하고, 새로운 경험을 멈추지 않는 시간을 갖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