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체성 기반의 문화 가치와 경관 회복을 위해 과거 번성했던 쇠퇴 구도심 등이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활용하여 품격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문화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하여
지역의 쇠퇴 문제를 직접 고민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방안 중에 하나인 지역 재생사업이다.
문화 재생사업이란 도시의 문화적 가치와 자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활동을 통해 침체된 도심의 기능을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문화재생은 문화적 삶의 장소로 도시를 활성화하기 위해 인적 자원과 콘텐츠, 프로그램 중심으로 도시재생을 추진한다.
관광자원을 활용해 관광객 유입, 마을기업 및 주변 상권 활성화 등 경제적 효과를 유발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기획할 수 있었다.
참고 :http://www.la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19578
50+도심권센타가 2019년 4월부터 10월 사이 종로지역 재생사업으로 ” 「탑골에 잇다」”도 문화 재생사업 중 하나였다. 도시재생을 도시의 기능을 상실했거나 활동이 멈춘 공간을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화 시켜 사회적 가치와 기능을 가진 장소로 재 활성화하는 사업의 일관으로 50+세대들이 직접 제작한 작품들을 판매 뿐만 아니라
시니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시니어들이 고충 예를 들어 자녀와 문제, 부부 문제, 금융 문제 등을 상담해주는 팀들과 현대 생활에 필수인 모바일 사용법을 도와 주는 팀 ,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바르게 전달하는 팀,
그리고 우리의 「탑골에 잇다」에 생기를 뜸북 넣어준 공연팀으로 구성되어서 2019년 보람되고 뜻 깊은 지역문화 재생사업이었다.
종로재생사업" "「탑골에 잇다」"에 상담과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는 "로로로","꿈세생애설계협동조합","다우리이에씨협동조합",
그리고 오늘 활동상을 소개할 "로로로"팀이다. . 로로로는 "역사를 해설해주는 단체로 "종로지역재생사업"
참여 동기는 3.1만세항쟁 100주년을 맞이하여 처음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역사적인 장소에서 탑골에 잇다을 계획한 도심권 50+센터의 기획과 동기가 너무 근사해서 기꺼히 응원하며 동참하고싶어라 한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역사 해설를 해줄때 시민들 반응은 탑골공원이 고종이 계획한 근대 도심 첫 공원임에도 불구하고
공원내 분위기가 고령의 어르신들 위주의 편향된 분위기여서 젊은층은 거의 출입을 않는 곳이다 보니,
처음 시작때는 시큰둥하고 분위기 쇄신이 쉽겠냐며 부정적이었으나 거듭되는 설명과 꾸준히 장이 서다 보니
서서히 젊은 층도 늘어나고 특히 점심시간에 젊은층이 산책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되었다.
의외로 탑골공원의 역사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라웠고 해설을 듣고 몰랐던 사실에 대해 미안해 하기까지 하는 시민들도 있어서 고무적이었다 한다..
탑골은 원래 매우 유서 깊은 땅이다. 고려 시대 흥복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다. 조선 세조는 이 자리에 원각사(圓覺寺)라는 더 큰 사찰을 새로 세웠다.
도성 안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연산군은 이곳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기방(妓房)으로 바꿨다.
중종은 아예 사찰을 헐어버렸다. 조선 후기 북학파 지식인들은 이 탑골에서 회합을 했다.
탑골에 살던 박지원을 중심으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외쳤다. 청나라의 발달한 문물을 수용하고 상공업을 진흥시켜야 한다며,
부국강병을 주창하던 곳이다.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때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공원의 명칭은 파고다. 불탑을 가리키는 서양식 표현(pagoda)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파고다 공원의 팔각정에서는 황제를 모시며 호위하는 부대인 시위 군악대가 연주했다..탑골공원 팔각정은 3ㆍ1운동의 출발점이다.
1919년 3월 1일 학생 대표가 이곳에서 민족대표 33인을 대신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3ㆍ1운동이 시작됐다가 탑골공원은 민족정기의 상징이 됐다.
총독부는 일본인 식당 청목당(靑木堂)에 탑골공원 부지를 대여해, 공공장소의 기능을 제한했다. 또 1926년 순종 서거를 계기로 6ㆍ10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용산 조선군사령부가 이곳에 임시 사령본부를 설치했다.조선의 언론ㆍ지식인들은 ‘탑골(파고다)공원’은 채만식은 『종로의 주민』이란 작품에서 탑골공원(3·1운동), 종로경찰서(탄압), 화신백화점(민족 자본)을 주요 공간으로 등장시키며 역사적 경험을 환기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신이 국부로 모셔지기를 바라며, 탑골(파고다) 공원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하지만 4ㆍ19 혁명 일주일 뒤인 4월 26일,
성난 군중들은 탑골공원으로 몰려가 이승만 동상에 철삿줄을 걸어 끌어내렸다. 7년 후 그 자리엔 3ㆍ1운동 민족대표 의암 손병희 동상이 세워졌다.
1967년 탑골공원은 종로 최대의 상업지구로 변모했다. 공원 내에 지상 2층의 상가 건물, ‘파고다 아케이드’가 들어섰고 공원의 절반 이상을
말발굽 모으고 둘러싼 형태였다.
‘파고다 아케이드’는 ‘반도 조선 아케이드’ ‘신신 백화점’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아케이드형 상가로 자리 잡았다.
파고다 아케이드는 1983년 철거됐다. 사적지의 경관과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아케이드에 있던 악기점 등은 대부분 낙원상가로 옮겼다.
90년대 종로 상권이 위축되고 IMF 외환위기가 겹치며 일자리를 잃은 가장과 집에서 눈칫밥을 먹게 된 노년층이 이곳으로 모였다.
탑골공원을 출발해 종로3가ㆍ종묘공원까지, 노인들의 거대한 ‘실버 벨트’가 형성됐다. 탑골 공원은 노년층의 전유 공간이 됐다.
서울시는 2001~2002년 탑골공원 성역화 작업의 일환으로 공원 내 음주·가무와 장기ㆍ바둑, 이야기 모임 등을 금지했다.
이에 노인들은 대거 종묘공원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2007년 종묘공원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자, 노인들은 다시 탑골공원으로 돌아왔다.
탑골공원의 역사적 가치 못지않게 “노년층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도심 공간이라는 가치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이곳에 "「탑골에 잇다」"를 위하여 알찬 프로그램과 상품을 준비하여 활동하였고
이곳을 자주 찾는 시니어의 고충을 해결해 드리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흥"도 선물하였다.
「탑골에 잇다」에 관계되는 모든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50+ 세대들은 오늘도 보람찬 일들을 찾아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사진, 글: 「탑골에 잇다」운영진 양해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