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공동체주거 이야기 - 06] 우리는 비정상가족(?)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있다.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 가족’이란, 아빠, 엄마, 그리고 정상자녀로 이루어져있는 전형적인 핵가족 형태의 가족을 말한다. 사회에서는 이게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고, 이러한 가족의 모습에서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이나 가령 기러기 아빠, 무자녀 가족, 입양가족, 동거가족, 조손가족, 동성결혼 가족과 같은 가족들을 비정상적으로 본다는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다.(위키피디아)
이에 따르면 우리집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정상가족이 아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할머니는 잘 사는 장남집이 아닌 둘째 아들인 우리 아버지 집에 거처를 정하셨다. '집안에 어른이 계시다는 것', 나는 그 느낌을 안다.
그리고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기억은 50이 넘은 지금도 아련하고 평안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우리 집에는 내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집안 어른 한 분이 꽤 오랜 기간 지내시기도 하였다. 가끔씩 그 분의 존재로 인하여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부싸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분은 아버지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항렬이 1대 위였다. 단지 그 이유 만으로 그 분은 우리 집에서 당당히 어른 행세를 하면서 지내셨다. 목소리도 크고 왠지 허풍이 심해 보였던 그 어른이 난 별로 였다. 어린 나에게는 이해안되는 세상. 나중에 어른들 하시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 분은 어느 학교의 교수님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집을 나가셨다.
지금은 늦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33에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우리의 신혼집은 서울 수유리의 빨래골이라는 북한산 자락의 10평 남짓한 작은 빌라. 그래도 방이 2개였다. 맞벌이 였던 우리는 결혼 채 2년이 안되어 낳았던 딸아이를 춘천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형님 댁에 보냈다. 결혼하고 2년이 채 안되는 딱 고 시간이 우리 부부가 단둘이 지냈던 기간이다.
이후 큰 형네 아들인 조카가 고등학교 3년을 빨래골 그 작은 우리 신혼집에서 동거를 했고, 이후에는 군생활 마치고 서울로 편입온 처남이 대학원 진학까지 2년을 우리와 같이 살았다. 그 다음에는 더 큰일 기다리고 있었다. 춘천에서 직장생활하던 형님이 회사가 서울로 이전을 하면서 서울로 이사를 와야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서울의 집값은 서민들에겐 늘 넘사벽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호 공생을 위해 형님네와 살림을 합치게 된다.
그나마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의정부에 50평대 새 아파트 전세를 얻어 이사를 갔다. 그 집에 우리 부부와 아이 3명, 형님네 부부와 아들 형제 4명, 어머니 아버지 2명, 그리고 큰형네 조카 1명, 이렇게 총 10명이 살았다. 의정부에서 6년, 서울에서 2년, 총 8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 사이 아버지는 돌아 가시고, 아이들도 성장하면서 형님네와 분가를 했고, 이후 어머니는 지금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신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형수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지혜롭고 현명한 두 여자가 힘들고 어려울 수 있었던 그 시절을 우리 가족이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가 살았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며... 놀라기도 하고, 일부는 불쌍하게 바라 보기도 한다 ㅎㅎ.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가족이라는 큰 틀 안에서 더불어 함께 살았던 그 시간이 삶에서 가장 풍부하고 역동적인 시간이었다. 늘 복작거리며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함께해서 행복은 배가 되었으며, 초기에는 갈등 상황도 적지 않았지만 어른들이 계셔서 자제하기도 하고, 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줄어 들었다. 각자의 경제적인 형편은 여의치 않았지만 협력적 주거를 통해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
공동체주거를 이야기 할 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가 전혀 거부감이 없고 익숙했던 이유는 결국 나의 과거 경험에 있었다. 그 느낌을 알기에 나는 주거공동체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그것은 결국 혈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물론 그말도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연 혈연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맺기와 공동주거는 불가능할까? 이것이 시니어공동체주거의 사업적 가능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