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살이 탐색과정 '강릉에서 살아보기' ⑦
극과 극 두 가지 한옥 체험
강릉오죽한옥마을 (강원도 강릉시 죽현동 885)
강릉오죽한옥마을은 한옥 체험을 통해 한옥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한옥 문화의 대중화•보급화와 주거문화 정착에 이바지하고자 2017년 1월 1일에 운영을 시작했다. 율곡 이이의 탄생지인 오죽헌 근방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이라는 이름답게 큰 한옥 단지여서 차를 숙소 앞 길가에 세울 수 있다. 잘 손질된 풀밭에 놓인 디딤돌들을 밟고 이동할 수 있다. 돌길을 따라가니 나무 빛을 그대로 내놓은 정갈한 한옥들이 독채로 되어있었다. 동이나 호수가 아닌 각각 이름을 갖고 있었다.
우리 조가 묶을 방은 ‘세심재’ 였는데 이는 ‘더러운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고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고치는 뜻’이라고 한다. 이이 선생께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저술한 ‘격몽요결’을 토대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옛 향교의 건물처럼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절제 미가 돋보였다. 저마다 이름과 뜻을 간직한 집들은 화려한 가을 풍경 속에 맑은 샘물처럼 머물러 있었다. 여기서 묵으면 녹차의 향긋한 향에 몸을 담그는 느낌일 것 같다.
전통 쇠고리 문 옆 네모난 단말기에 카드 키를 대니 유쾌한 기계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 거실이 보였다. 옛 문을 떼어 만든 테이블이 있었다. 유리가 위에 깔려 사용하기 편리하면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살렸다. 벽면엔 낮은 선반에 커다란 텔레비전과 커피포트, 차가 놓여있었다. 커피가 놓여있는 일반 숙소와 달리 ‘감로차’가 있었다. 이 차는 ‘강릉의 해발 700미터의 신선함을 담은 차로 잎 자체에서 나오는 천연 단맛과 박하향이 나는 차’라고 적혀 있었다. 따뜻한 물에 마셔보니 정말 달았다. 설탕을 안 써도 이런 맛이 나다니 신기했다. 작은 냉장고과 드라이기도 있었다.
거실과 방 사이엔 미닫이 문이 있었다.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2’에 ‘미닫이문은 옆으로 포개지면서 열리고 닫힌다. 벽을 헐어내고 만든 통로가 아니다. 애초부터 통로로 태어난 문이다. 이 문은 소통과 구획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했다. 그에 비해 ‘아파트의 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순간에만 문이고 닫혀 있을 때는 벽이다.’며 미닫이문의 소통 기능을 찬양했다. 벽장을 여니 청결하고 두툼한 호텔식 이불이 정갈히 쌓여있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화장실과 샤워실의 분리와 세련된 디자인이었다. 한옥의 단점은 씻는 곳과 화장실의 불편함과 보안의 허술함인데 현대적 기술로 완벽하게 보완했다. 더구나 강릉시에서 운영해서인지 쾌적함과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비해 가격도 착하다는 게 강릉살아보기 체험담의 중론이었다.
왕산골한옥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347)
호수나 개울을 끼고 아름답고 한적한 왕산골자기로 굽이굽이 들어가면 산의 일부인 듯 한옥이 놓여 있다. 가파르고 좁은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가니 누군가 ‘고생하셨어요’ 힘찬 인사를 한다. 산악대장 같이 다부지게 생기신 사장님이었다. 그 옆에 시골 분 같지 않게 피부가 곱고 소녀같이 조용한 모습의 사모님이 계셨다.
왕산골한옥은 방 네 개가 한 동에 ‘ㄷ’ 자로 붙어 있는 제법 큰 집이다. 마당에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한국의 집들은 마당을 비워 놓는다. 마당의 역할은 연회장, 교육장, 놀이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나무를 심는다면 돌로 주위를 둘러야 한다. 이곳의 나무도 돌로 주위가 둘러쳐져 있었다.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과 마당을 가로지르는 낮은 담에는 작은 화분들이 아기자기하게 있었다. 방에 들어가니 뜨끈뜨끈한데 이불을 깔아 놓으니 더 뜨거워졌다. 어릴 때 한옥에 사셨던 외할머니 댁에 온 듯한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 부부는 우리에게 달걀, 옥수수, 고구마를 삶아 주시며 불편한건 없는지 계속 살펴 주셨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툇마루에서 멀리 산을 바라만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저 멀리 자작나무 숲이 아름다웠다.
손을 깍지 껴 뒤통수에 대고 툇마루에 누워 있으니 현판과 기둥의 글씨들이 눈에 띄었다. 까만 바탕에 아름다운 하얀 글씨인데 어떤 것은 양각, 어떤 것은 음각이었다. 서체가 고풍스러워 지은 지 오래된 한옥인지 사장님에게 여쭤봤더니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집을 짓기 전에 대학원에서 한옥에 대해 공부를 해서 ‘최근에 지어졌지만 가장 전통적으로 지어졌다’고 말씀하셨다.
유레카. 직접 한옥을 지으셨다니. 전통적인 한옥에 관해 이야기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집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건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주춧돌에 ‘그랭이 뜬다’는 말은 수평을 맞춘다는 말이다. 주춧돌에 기둥이 들어갈 자리를 파고 소금과 숯을 놓는다. 그 안에 기둥을 세우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지붕에 들어가는 흙들은 덤프트럭 3차 이상이다. 이것들이 지붕 사이에 들어가야 비가 새지 않는다. 기둥이 중요한 이유이다. 시간이 지나 기와 사이사이 먼지가 들어가면 그곳에 풀이 자란다. 풀의 뿌리로 기와가 들떠 비가 샌다.
인건비가 제일 비싼건 와공이다. 여기는 눈이 많이 와 물뫼가 싸서(쎄서) 다른 한옥보다 지붕의 곡선이 더 많이 휘고 경사도 급하다. 사람이 직접 올라가 추를 달아 경사를 재고 나무를 나사처럼 박아 곡선을 일일이 맞춘다. 지붕밑의 동그란 서까래와 그 위의 네모난 ‘부연’도 지붕의 위에서 걸터앉아 길이를 같게 해 톱질을 한다. ‘부연’이라는 말을 ‘연꽃’이라고 생각하지만 ‘뜰부’와 ‘석가래연’자를 쓴다.
부부의 생년월일을 풀어 방위를 서남쪽으로 잡았다. 한옥의 뒤는 현무를 뜻하는 언덕이 있다. 현무 앞엔 주작을 의미하는 연못을 팠다. 연못은 음양을 조화시키는 물이기도 하고 화재를 방재하는 방화수로 쓸 수 있다. 마당도 밑으로 7미터를 파고 마사토를 5~7트럭을 넣어 땅을 다졌다. 나쁜 기운을 막고 땅에서 비추는 빛의 에너지는 반사되어 방으로 들어온다.
쾌적함과 따스함 사이
강릉시청 미래성장과의 지원으로 색다른 재미의 한옥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오죽한옥마을은 강릉시에서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다.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큰 단지 안에 여러 동이 있다. 시내와 가까워 어디라도 교통이 좋은 편이었다. 율곡이이의 교육철학과 현대적인 편의 시설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옥으로써의 정체성이 분명한 아름다운 건물이다. 다양한 강릉에서의 놀거리 먹거리 후 지친 몸을 고급 호텔의 편리함으로 풀어준다. 한옥체험 자체가 강릉 관광의 연결점이다.
왕산골은 마음이 따뜻한 부부가 직접 운영한다. 한 동으로 이뤄졌다. 편의 시설이 없는 깊은 산속에 있어 조용하고 자연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지은이의 한옥에 철학과 자부심과 따뜻한 보살핌이 있는 곳이다. 뜨끈뜨끈한 구들장에 여행의 피로를 녹여버리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하루의 마침표이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두 가지 한옥을 비교하며 즐기니 기쁨이 더 커졌다. 왕산골한옥 권우태 선생님의 전해 준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한옥의 철한적인 면
첫째, 고무신이나 저고리 소매 같은 은은한 자연의 ‘곡선’을 갖고 있다.
둘째, 흙과 나무로 지어져 쓰임이 끝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셋째, 주변의 자연을 담을 통해 정원으로 빌려쓰는 ‘차경’문화이다.
*** 본 글은 지역살이 기록가가 강릉에서 살아보며 담아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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