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서울50+(뉴딜)인턴십 참여자 인터뷰 ⑨
소셜마케터 | 이영지
생전 처음으로 맘카페에 가입했다. 종일 수시로 접속해서 새 글을 체크하고, 댓글을 달고, 글을 올렸다. 수백 개의 댓글을 달고 수십 편의 글을 작성해야만 회원 등급이 올라 다른 회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7만여 명이 넘는 회원이 활동하는 거대한 커뮤니티에서 어떤 말이 오가고, 어떤 이슈가 떠오르는지 늘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맘카페는 주로 젊은 여성들이 육아와 생활 정보, 지역 소식을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이다. 유명 맘카페는 지역의 밑바닥 여론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력을 지녔다. 간혹 잘못된 정보가 부풀려지고 섣부른 여론몰이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지역의 여성들에게 무언가를 알리고, 그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기에는 맘카페만 한 곳이 없다.
7월부터 성북구마을사회적경제센터에서 50+인턴으로 일하는 이영지 님(49)이 근무 시작과 함께 맘카페 활동을 시작한 이유다. 그는 인턴 일 때문에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맘카페에 들어갔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활동이 모두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그 역시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했다.
- 맡은 업무를 소개해주세요.
20~40대 여성의 온라인 주민 참여 활동을 활성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업무 목표에요. 센터 홈페이지를 굉장히 잘 만들어 놨는데 방문자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거예요. 홍보가 많이 부족했어요. 그러다 보니 (홍보 채널로) 맘카페에 주목하게 됐고, 처음에 성북구 주민들이 활동하는 맘카페 4~5개를 찾았어요. 그중 회원 수도 많고, 광고성 글이 올라오기보다는 정말 엄마들의 활동이 활발한 카페 한 곳을 택했죠.
- 맘카페에 글을 올리는 게 주된 일인가요.
맘카페에서 다른 회원에게 뭔가를 소개하려면, 회원 등급이 업그레이드되어야 하거든요. 등급을 올리려면 댓글 몇 개, 작성 글 몇 개 이런 식으로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해요. 또, 센터 활동이나 협동조합 같은 걸 소개하려면 제가 나름대로 인플루언서가 되어야 엄마들한테 신뢰를 얻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좀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 지금까지 몇 건의 글을 올렸나요.
글은 50건 정도 올렸고, 댓글은 셀 수도 없어요.
그는 센터 소식과 사회적경제 관련 기사를 소개하는 글을 올리거나 카페 회원들이 관심 가질 만한 주제의 글을 작성해 올린다. 육아, 먹거리, 교육 등을 주제로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과 정보를 전달한다. 며칠 전에 올린 글은 10여 분 만에 천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가 믿을만한 발화자로 인식될수록 많은 이에게 낯선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쉬워진다.
- 맘카페 회원은 대부분 젊은 주부들인가요.
거의 이삼십 대이고, 나이가 좀 많으면 사십 대 초반이에요. 아이들도 커봐야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고요. 맘카페에 들어가니 좋은 점이 최근 이삼십 대 엄마들이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는지 그 키워드를 알 수 있는 거예요. 한동안은 코로나 여파로 제일 관심 있던 게 마스크와 방역 상황, 집콕 놀이와 집밥 요리 레시피, 볼만한 아동도서와 프로그램 정보, 이런 것들이었죠. 그런 키워드를 센터 팀장님들께 알려드리면, 팀장님들은 그런 키워드에 맞춰서 마을 기사를 쓰시는 거죠.
- 맘카페 활동과 관련해 센터와는 어떻게 논의하면서 진행하나요.
일주일에 한 번씩 미팅을 해요. 이번 주에는 이런 주제로 글을 올릴 것 같다 말씀드리고, 센터에서는 이번 주에 톺뉴스(센터 유튜브 채널 콘텐츠의 명칭)로 이 주제를 다룰 것 같으니 이런 걸 좀 준비해달라고 요청하시죠. 매주 계획을 세우는 거죠.
성북구마을사회적경제센터에서 50+인턴으로 근무하는 이종오 님(좌)과 이영지 님.
- 다른 온라인 활동 공간은 없습니까.
맘카페 일만으로도 바쁘죠. 카페 글을 모니터링하고, 카페에 올릴만한 성북구 관련 기사도 검색해서 찾아봐야 해요. 50+인턴으로 함께 일하는 이정오 선생님께서 센터와 관련된 블로그 작업을 하고 계시거든요. 선생님께 필요한 기사도 많이 찾아드려요, ‘여원’이라는 여성 잡지의 편집장을 지내셨던 분인데, 지금은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계세요. 개인 블로그에도 여기 소식을 알리고 계셔서 선생님께 필요한 내용이 있으면 찾아드리곤 하죠.
- 거의 실내 근무만 하겠네요.
돌아다닐 수가 없으니까요. 원래는 마을에서 열리는 행사들이 많이 있었어요. 소모임 커뮤니티 클래스나 배움교실 같은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해서 취재도 하고 후기 글도 올릴 계획이었는데, 다 취소되거나 연기되었죠. 이 선생님과도 처음에는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자 이런 계획들을 참 많이 세웠죠(웃음).
이영지 님은 서울50+인턴십 소셜마케터 사업으로 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소셜마케터로 선발된 50+인턴은 서울·경기 권역 사회적경제 기업 중간지원 기관에 배치되어 사회적경제 기업의 판로 개척, 영업 지원 등의 활동을 펼친다. 월 57시간 근무하는 파트타임 인턴으로 4개월간 활동한다.
성북구마을사회적경제센터는 성북구 사회적경제 생태계의 성장과 활동을 돕는 중간지원 기관이다.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를 두 축으로 삼아 성북구 관내 정보를 수집하고, 소식을 전하며, 주민 대상 공모 및 지원 사업, 교육 프로그램 등을 주관한다.
그는 이전부터 지역 행사를 통해 협동조합이나 마을공동체의 활동을 알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자신도 관련 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소셜마케터 사업 공고를 접했다. 성북구마을사회적경제센터의 경우 센터 홍보 업무에 도움을 줄 50+인턴을 찾았고, 그 또한 글 쓰는 일을 좋아해 센터 근무를 지망했다.
-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연령대가 어떻게 되나요.
팀장님 두 분과 일하는데, 두 분 다 삼십 대로 알고 있어요.
- 직원들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아주 좋아요. 빈말이 아니라 저랑 이 선생님이랑 “우리 참 인복이 있다”고 말해요. 남다른 소명감과 열정을 갖고 일하시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팀장님 두 분께 배울 점이 더 많아요.
-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랄까요. 요즘 그 또래답지 않게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 분들이에요. 한 분은 대학 다닐 때부터 이쪽 분야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셨대요. 얘기를 들어보면 ‘돈만 좇는 일부 젊은 세대와는 다르구나’ 알 수 있죠. 그분들을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아요.
(성북구마을사회적경제센터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50+인턴십에 지원하고 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온라인 활동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19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성북구는 한 교회에서 다수의 집단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주민의 외부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었다. 불가피하게 온라인 활동에만 치중하게 됐지만, 반대급부로 좋아하는 글쓰기에 집중할 기회를 얻었다.
작년에는 찾아가는 우리동네 자영업반장 사업에 참여했어요. 매장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어서 지원했던 건데, 금융권 퇴직자 맞춤형 사업이라 활동을 하면서 제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좀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도 했고요. 제 또래들은 적성이 뭔지 모르고 직장 생활을 오래 해왔는데, 단기간 인턴으로 일하다 보면 어떤 일이 나한테 잘 맞는 일인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올해에는 제가 좀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방향성을 맞춰서 지원한 것이 소셜마케터 사업이에요. 예전부터 글을 쓰는 게 제일 즐거운 일이었는데, 이곳에 와서 글을 쓰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셈이죠.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 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0대에는 외식 창업에 도전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후 시립 도서관 입점 매장 운영 매니저로 6년간 근무했고, 패션 기업과 무역 회사에서 해외 마케팅, 해외 영업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2016년을 전후해 예기치 못한 일이 연달아 생기면서 갑작스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을 추슬러야 했다. 한창 일해야 할 시기에 뜻하지 않은 경력 단절과 긴 공백기를 경험했다. 해가 몇 번 바뀌면서 점차 주변 상황은 나아졌지만, 자신까지 돌볼 여력은 없었다.
자영업반장 사업 지원을 결심할 무렵, 삶이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았어요. ‘아, 나는 그동안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뭘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정보를 찾아보다 50플러스재단에 들어가 본 거죠. 처음에는 유튜버 관련 강의나 책 읽기 모임이 없나 찾아보다가 용기를 내서 지원했던 게 자영업반장 사업이었어요.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분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다 보니 또 다른 정보를 얻게 됐죠. 그렇게 삶이 점진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 거죠. 친구들한테도 제 이야기를 해요. 이제 애들도 다 키웠는데 그렇게 집에만 있지 말고 50플러스재단에 나오라고요.
- 50+인턴십 참여자 중에는 무척 젊은 편에 속합니다.
사실 오십이 안 됐는데 좀 빨랐죠. 실은 젊은 친구들이 있는 집단에 가는 것은 살짝 두려웠어요. 심리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갑자기 젊은 분들 있는 곳에 가서 ‘으쌰으쌰’ 할 자신이 없었죠. 은퇴하신 분들, 50+세대 분들이 계신 곳에 가면 제가 어색하지 않게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의 선배님들께 지혜로운 교훈 같은 걸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컸어요.
- 그런 마음도 있었군요.
젊은 분들은 막 궁금해해요. ‘저 사람은 왜 갑자기 저 나이에 새로운 것을 시작할까’ 그러죠. 그런데 인턴십을 하면서 만난 분들은 ‘어, 젊은 친구가 와서 더 반갑네’ 이렇게 생각해주시더라고요.
- 작년과 올해, 50+인턴으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같은 뜻을 가진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와 소통이죠. 자영업반장 사업에 참여했을 때 조를 짜서 활동했는데, 조장님께서 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하신 분이셨어요. 부족했던 부분을 많이 도와주셨고, 지금도 종종 서로 소식을 전하죠. 제가 지금 이렇게 활동하는 일들 자랑도 하고, 선생님께서도 기업체에 고문으로 가 계셔서 잘 지내시는지 안부도 여쭙고요. 제가 언니나 오빠가 없기 때문에 학교 졸업하고 나서는 저보다 나이가 위인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잘 없었어요. 이렇게 다시 그 연배분들을 뵈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그 시절에 어떤 고민을 하셨을지 알게 되고, ‘아버지도 어쩌면 많이 외로우셨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들은 또 저를 보면서 제 또래를 이해하시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 50+세대도 다양한 연령대로 나뉘니까 인턴십을 통해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도 하게 되는 거군요. 개인적인 변화는 없었습니까.
예전에는 ‘나이 오십 줄이 넘으면 새삼스럽게 뭐를 하겠어’ 이런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더 다양한 것들을 배울 기회가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아이를 키울 것도 아니고, 시간도 많아졌잖아요. 제가 못 해봤던 것, 하고 싶었으나 잊고 있었던, 놓쳤던 것들을 다시 찾아서 할 수 있는 거죠. 몇 해 전부터 틈틈이 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나이가 들어야만 이해가 되는 공부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찾아서 다시 배우는 계기가 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 배워야겠다는 욕구가 새롭게 생긴 것 같습니다.
그렇죠. 어릴 때 경험했던 배움하고는 또 달라요. 아마 이삼십 대에 명리학 책을 읽었다면 이해가 안 됐을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책을 보니, ‘아, 인생의 사계절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구나’하고 돌아보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젊은 시절 부모님의 뜻대로 삶의 방향을 정한 기억이 많다고 했다. “온전히 혼자 선택하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경력 공백을 겪은 뒤 50+인턴십으로 다시 사회에 발을 디딜 계기를 마련했다. 사람, 정보, 경험, 그리고 자신감을 새로이 축적하면서 이런저런 계획도 세우게 됐다.
당장은 지난 몇 개월간 맘카페에서 공들여 쌓은 신뢰 관계를 토대로, 인턴십 기간 이후 센터 활동에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방안을 구상 중이다. 맘카페에 센터 소식을 주기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카페 운영진에 협업을 제안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꾸준히 찾아보려 한다. 최근에는 지역사회 소식을 발굴해 전달하는 서울시 리포터로도 선발되었다. 10주 교육을 마친 뒤 공식적인 마을 메신저로 활동할 계획이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 온 인생 목표도 있다. 아직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가 맘카페에 올린 글이 어렵지 않게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을 보면, 그리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적은 감상평을 따로 폴더를 만들어서 모아 둘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굉장히 많이 썼거든요. 나중에는 책을 한 권 내고 싶어요. 가까운 장래에 될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꿈이 있어요.
인터뷰 기획·진행 l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
소셜마케터 사업 운영 l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일자리팀
사진 l 김태은
* 서울50+(뉴딜)인턴십 현장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참여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글의 내용이 모든 사업 참여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입장과도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50+(뉴딜)인턴십
50+세대가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배우는 동시에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앙코르커리어를 개척할 기회를 제공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입니다. 서울50+인턴십(파트타임형)과 서울50+뉴딜인턴십(풀타임형)으로 나뉩니다. 2020년 8개 세부 사업별로 참여자를 모집해 300여 명의 50+인턴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1년 상반기에 새롭게 참여자를 모집할 계획입니다.
연재 순서
⑨ 맘카페의 사회적경제 전도사(현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