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은 밤길에 왜 등불을 들었을까?
어두운 밤길을 걷는 사내가 맞은편에서 등불을 들고 오는 사람을 봤습니다.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자세히 보니 등불은 든 사람은 다름 아닌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등불을 든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당신은 앞을 볼 수 없을 텐데 왜 등불은 들고 다니는 겁니까?”
등불을 든 사람이 답했습니다.
“제가 등불을 보지는 못하지만, 등불을 들고 다니면 나와 마주치는 다른 사람이 내가 눈먼 사람인 줄 알고 조심해서 미리 비껴갈 수 있도록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소경의 등불’ 이야기다. 시각장애인이 야간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임과 동시에 경고다.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나를 안전하게 지킨다는 지혜와 경각심을 함축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프로파일러(profiler)의 세계에서도 종종 인용된다. 범죄 심리와 범죄자 행동분석을 하는 프로파일러가 상대방의 마음속 깊이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범죄자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며 내면의 심리를 알아내는 것이다.
▲ 강동50플러스센터 개관 1주년 기념 ‘강동오플제’ 개막 특강이 11월 21일 실시됐다. ⓒ 50+시민기자단 김석호 기자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이유>가 궁금한 까닭이 있다
이런 점에서 강동50플러스센터가 개관 1주년 기념행사 ‘강동오플제’ 개막에 맞춰 마련한 특강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이유> 프로그램은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박사가 강사로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50+세대만이 아니라 서울시민들의 대거 수강 신청을 했다. 강의실이 부족해서 실시간으로 인터넷 중계까지 했다.
특강 제목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이유>인 것이 궁금하다. 프로파일러 권일용 박사가 범죄 현장 경험을 논픽션으로 공동 집필한 책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영향이다. 또 이 책을 원본으로 올해 초 방송됐던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을 주목했다. 당시 이 드라마는 ‘천사와 악마는 한 끗 차이라고 하는데, 극악 범죄를 저지르는 악의 마음은 어디서부터 엇갈렸을까? 그토록 악하게 만든 게 무엇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열 길 물속보다 알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 그것도 범죄자 악(惡)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프로파일러’의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그 유명세를 타게 됐다.
▲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책 제목과 드라마 제목이 똑같다.
프로파일러에 관심이 많다는 한 50대 여성은 범죄예방의 지혜를 얻으려고 직접 현장 수강을 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이상한 사람 많잖아요. (범죄자) 그 사람 마음속을 모르니까 그 마음을 읽고, 읽어주는 기술을 배우러 왔어요.”
강의 주제가 마음에 든다는 60대 남성은 속마음을 알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려고 참석했다.
“특강 제목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니까, 초등학생인 손주가 말썽을 부리는데, 손주의 마음을 읽고 다가가는 데 참고가 될까 해서 왔어요.”
▲ 시민들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이유> 특강을 진지하게 수강하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김석호 기자
자녀의 심리적 고립과 대화 단절 없도록 유념해야
특강에 나선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우선 범죄 유형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정에서 자녀들이 심리적 고립과 대화 단절로 디지털 관련 범죄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라고 주문했다.
과거 범죄의 경우 수사반장이 출동하면 대부분 해결되는 범죄 유형이지만, 최근의 범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녀들이 가정에서 섬처럼 심리적으로 고립돼 범죄에 빠져들고 있는데, 가족 내 범죄는 몇 년 사이 발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가족 내 범죄가 가장 많은 이유는 가족에 대한 잘못된 배려 때문이라고 한다. 자녀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모르고 자녀의 고민을 들어주기보다는 무조건 배려만 해 주면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족은 평소보다 조금만 서운하게 대해도 화가 나고 분노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해 주고 싶은 걸 사랑과 배려로 잘못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밖에서 일하는 부모가 힘들고 지치다 보면 집안에서 자녀들과 내면의 대화를 못 하게 되고, 따뜻해야 할 가족의 정은 잘못된 배려로 왜곡된다. 그러다 보면 가족 간의 사랑이나 정에 틈이 생긴다. 그 틈새로 엉뚱한 정보나 친절을 가장한 배려가 끼어들면서 자녀들이 범죄자들과 연계된다는 것이다. 그루밍(grooming) 성범죄나 디지털 성범죄가 바로 그것이다.
범죄자 중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연쇄살인만 하는 게 아니라 성범죄, 사기, 경제범죄 등을 더 많이 저지른다는 게 강사의 설명이다. 이들은 죄책감이 없고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받도록 만든다. 이는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을 당한 피해자를 비난하면 그것이 2차 가해가 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한다.
90% 이상이 개인정보 유출로 범죄 발생
사이코패스 종합판 격인 성 착취범 N번방 사건은 범죄자들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협박해 성 착취 범죄를 연쇄적으로 저질렀다고 밝혔다. 또 조직범죄로서 피해자에 대해 두려움과 심리적 조종으로 청소년 범죄 개입이 빨라졌다는 게 권일용 프로파일러의 분석이다.
범죄분석 결과 놀랍게도 90% 이상이 개인정보 유출로 가족 내 범죄가 발생했다고 한다. 자녀들의 개인정보 유출을 막아야 하지만 평소 한국인의 정보보호는 취약하다. ‘우리’라는 프레임에 갇혀 쉽게 정보를 노출하거나 공유하고 있는데, 범죄자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개인정보 보호의 범위나 목적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시키고 정보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자녀의 행동이 이상하다거나 범죄자로부터 협박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는 관계기관에 알려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심각한 경우 신속하게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평소와는 달리 우울해 보이고 눈치를 보거나 고립된 느낌이 들 때는 누군가로부터 협박받는다고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자들은 피해 자녀들에게 ‘너 때문에 가족 누군가 죽을 수 있다’라는 등 두려움과 공포심을 조장하며 협박한다고 한다. 또 친구에 대한 험담과 부모에 대한 거짓이나 오해를 사도록 얘기를 해서 친구와의 만남이나 부모와의 대화를 피하게 하는 등 자녀를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범죄는 예방이 중요… 자녀의 행동이 이상하면 눈여겨봐야
범죄는 예방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목표가 없는 자녀들이 고립되고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많다는 점을 인지하고 위험을 제때 감지하는 게 중요하다. 도박과 마약은 시작하면 중독돼 끊기가 어렵다며 예방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 특강이 종료된 후 시민들이 강사와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도 받고 있다. ⓒ 50+시민기자단 김석호 기자
특강이 끝난 뒤 참석한 수강자들은 줄을 지어 강사와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아 챙기는 등 상당히 호의적이다. 특강에 대한 만족감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요즘 범죄 현상에 대해 들었는데 대안도 참 좋았어요.”
“사회복지와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 서초동에서 일부러 수강하러 왔는데요, 아주 유익했어요. 우리 사회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대비해야 되고 스스로 대응하는 그런 기회가 되는 것 같아요.”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이번 특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으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외에 <마음의 사냥꾼>(원제: 마인드 헌터, MIND HUNTER)을 추천했다. 미국 FBI 전설로 알려진 존 더글러스를 모델로 펴낸 이 책은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하며, 악의 마음속으로 좀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갈 것을 주문한다. 그러면서 범죄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주변의 일이 됐지만 “악은 절대 선을 이길 수 없다”라고 일갈했다.
“요즘 범죄자들은 범행을 저지르면서 법 개념이 없고, 운이 나빠서 체포됐다고 생각해요. 죄책감이 없어요. 그들은 ‘마동석’ 같은 형사를 무서워하지 않아요. 이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마음만 갖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범죄예방에 충분합니다.”
선한 시민들 스스로 관심을 갖고 서로를 보호하려는 행동이나 시스템을 범죄자들이 두려워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범지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무관심이 곧 우범지대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도시설계를 할 때 프로파일러 등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공동 연대와 공동체의 공간을 연계해서 범죄환경을 줄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0+시민기자단 김석호 기자 (ks08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