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수)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에서 ‘음악과 낭독이 있는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북 토크 주인공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를 쓴 심혜경 작가. 이 행사는 ‘2022 우리동네 인문책수다’에 선정된 오도독(오플쿱사회적협동조합 독서동아리) 주관으로 진행되었다.
책을 미리 읽은 터라 궁금했다.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예쁜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뭔가에 몰두하는 할머니라니. 희끗한 머리칼이 멋스러운 분일까? 잠시 머리를 쥐어짜도 도무지 상상이 안 되었다. 그녀를 만나고 깨달았다. 어차피 그려낼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 북 토크 행사장 입구 / 오도독 홍보 현수막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너무 젊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라더니 북 토크에서 만난 그녀는 상상으로 가능한 할머니가 아니었다. 스르륵 내 곁을 지나 진행을 맡은 박일호 님과 인사를 할 때까지 화장실 세면대에 나란히 서서 손을 씻은, 챠콜색 후드 셔츠 모자를 깊이 눌러쓴 젊은(실제 나이는 60대) 그녀가 심혜경 작가였음을 짐작이나 했겠냐 말이다.
행사를 위해 책상을 치우고 빙 둘러놓은 의자가 순식간에 채워졌다. 노란 후드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읽는, 잠자리 안경을 걸친 커트 머리의 그녀, 책 표지의 그녀가 셔츠 색만 바뀐 채 걸어 나와 내 앞에 앉아있었다.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워선지 다소 쑥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문득문득 소녀가 느껴졌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를 통해 그녀를 먼저 알아보자.
▲ 북 토크 시작 전 박일호 님과 대화 중인 심혜경 작가 / 책에 언급된 펜 PILOT FRIXION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번역가로 활동하는 심혜경 작가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시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27년간 근무한 이력이 있다. 작업에 속도를 내고 싶으면 카페에 간다는 그녀. 카페에서 뭔가 하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다방이 있던 시절부터 시험공부 등 집중을 필요로 할 때마다 커피 향 풍기는 공간을 찾았다고 한다.
그녀의 배움에 대한 호기심은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악기 하나쯤은 배우고 싶어 구민회관에서 클래식 기타를 배우다 코로나로 수업을 못 하게 되자 친구 따라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문화센터에 등록하면서 자신을 ‘친구 따라 강남 가기’의 전형적인 예라고 밝히기도 했다.
▲ 분위기가 좋아 찰칵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시종일관 웃고 즐기는 분위기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사전 앱이나 썼다 지울 수 있는 최애(최고로 사랑하는) 필기구(PILOT FRIXION, 이 펜은 오도독 허성희 님의 센스로 북 토크를 찾은 독자들에게 기념품으로 주어졌다)도 언급한다. 스스로 학구파 아닌 학교파(공부가 아니라 학교 가는 것을 즐긴다는 의미)라고 하는 그녀는 졸업한 지 오래라 대학원 입학에 도움(석사 학위 취득 때 영어 성적 필요)이 될까 싶어 들어간 방송대(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을 마치고 다시 방송대 중어중문학과, 일본학과, 프랑스언어문화학과를 각 3학년에 편입하여 세 개의 학위를 더 받았다. 40여 년 전 학위까지 총 다섯 개다.
배움에서 연결된 번역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윤독(돌아가며 책 읽기) 모임 등 독서 모임을 이어가고 있으며 배움에 관한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한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를 출간해 유명세를 타고 있다.
▲ 북 토크 참석자들의 단체 사진 ⓒ 도심권50플러스센터
잊을만하면 퀴즈를 날려 선물을 안기는 박일호 님의 탁월한 진행 덕에 마음이 편해졌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심혜경 작가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방송대가 들어가긴 쉬워도 졸업은 엄청 어렵다는데 공부한 비결이 뭐냐?”라고 묻자 “너무 없어 보이지 않게 중간만 유지하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그녀. 퇴근 후 밤마다 번역해 첫 책을 완성했던 번역가로서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그 시간이 있어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것 같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초승달 같은 눈웃음이 참 예쁘다.
▲ 미소가 예쁜 두 사람 / 축하공연을 해 준 오플밴드 김대현 님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북 토크의 꽃, 축하공연도 빠질 수 없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모르면 간첩이 된 오플밴드 김대현 님이 저음으로 부르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달큰한 기타 소리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듣는 이들의 마음을 적셨다. 이밖에 자신의 경험이 담긴 자작곡과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등도 불러주었는데 시월에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한 센스가 돋보였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를 읽은 독자의 책 속 감명 깊은 한 구절을 듣고 기타 소감과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한 독자가 “책이 작아서 휴대하긴 좋은데 글자가 너무 작아서 노안이 있는 50+세대가 읽기는 부담스럽다. 증보판이 나온다면 글자를 키우면 좋겠다”라고 하자 “종잇값도 30% 올라서 그러면 책값도 올려야 하고…”하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 책 속 마음에 남는 구절을 낭독하는 전미래 님 / 저자 사인회 ⓒ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글쓰기에 대해서는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를 예로 들며 “다 배워서 쓴다고 생각하면 쓸 수 있는 글은 유언장 정도일 것이다” 하는 말로 망설이는 이들의 뼈를 때리기도 했다. 토크 말미에 그녀는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 연설 중 일부를 들려주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않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게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기념 촬영과 작가의 사인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고 사인을 해 준 그녀. 책을 읽은 독자로서 북 토크에서 본 그녀는 예상보다 더 젊었다. 그리고 참 예뻤다!
50+시민기자단 정용자 기자 (jinju1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