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온라인 진로사람책’이 되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게는 ‘봄날의 햇살’ 같은 친구가 있습니다. 서울시50플러스 북부캠퍼스에는 ‘초여름의 햇살’ 같은 선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햇살’은 차이(差異)가 있습니다. 각 햇살의 결(성품의 바탕이나 상태)과 무늬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겁니다.

 

봄날의 햇살은 예쁩니다. 끝! 초여름의 햇살은 씩씩합니다. 호탕합니다. 당당합니다. 그리고 웃을 때(는, 만, 도) 예쁩니다. 끝! 

 

8월의 어느 날, 초여름의 햇살이 전화했습니다. 씩씩한 말투와 호탕한 목소리로 당당하게 용건을 말했습니다. “‘사람책’을 하시지요!” 만화책, 소설책은 들어봤어도 ‘사람책’은 금시초문이라 다소곳하게라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책이 뭔가요?”라고. 그랬는데 무심결에 내가 한 말은 “네에~!”였습니다. 그러자 이어지는 초여름 햇살의 그 웃음소리. “ㅎㅎ하하후후헤헤헿헿~.”

그렇게 해서 부랴부랴 온라인으로 서류를 접수했고, 서류 심사를 통한 선발 기준에 부합하는 대상자로 확정되어 얼떨결에 ‘50+자원봉사단 온라인 진로사람책’이 되었습니다.

- 전·현직 직업인 및 해당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청소년 진로 교육 기부 자원봉사자가 청소년을 소규모(5명 이내)로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에서 만나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활동입니다.

- 청소년에게 직업에 대한 이해와 직업인의 가치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진로 멘토링 프로그램입니다.

 

‘사람책’이 된 그 날부터 불면의 밤이 이어졌습니다. 깜빡 잠이 들면, 머리가 식빵이고 그 아래에 몸통과 팔다리가 붙어있는 ‘식빵맨(날아라 호빵맨의 등장인물로 카레빵맨과 함께 호빵맨을 보조하는 세컨드 히어로)’처럼, 머리가 책이고 그 아래에 몸통과 팔다리가 붙어있는 ‘책사람’이 되어 여기저기를 마구 헤매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렇게 잠을 못 이루며 근심하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이유를 너무 잘 알아서 불면이 밤이 더 깊었던 겁니다.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으니 마음이 불편한 게 당연했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불쑥 떠올라 가슴이 콩콩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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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진로사람책 양성교육’을 마치고 한 컷. 맨 왼쪽이 ‘초여름의 햇살’입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차에 (사)한국자원봉사문화 핸즈온센터가 주관하는 ‘온라인 진로사람책 양성교육’을 받았습니다. 북부캠퍼스 지하 1층 모두의 강당에서 8월 31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였습니다. 대면 교육이 어려운 사람책은 온라인으로 같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연구나 정부 정책 제안, 시니어의 사회 참여, 기업 사회공헌활동 등을 지원하는 자원봉사 전문 비영리 단체입니다.

50+자원봉사단 온라인 진로사람책’은 이 단체를 활동처로 삼아서 9월 19일(월)부터 23일(금) 사이에 온라인으로 진로 멘토링을 진행했습니다.

 

이 교육은 여러 측면에서 유용했습니다. 특히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었던 17권의 ‘사람책’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서로 의논하고 공유하는 1권의 ‘사람책들’로 뭉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한국자원봉사문화 강혜자 국장이 진행한 이번 교육에서 처음 알게 된 것, 새롭게 깨달은 것들은 이러합니다. 

 

사람책(Human Library) 또는 사람책 도서관(Living Library) 

-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2000년에 덴마크에서 열린 한 뮤직 페스티벌에서 창안한 신개념의 ‘살아있는 도서관’을 말합니다.

- 독자들이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휴먼북)’을 빌리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준비된 휴먼북 목록을 살펴보고, 읽고 싶은 휴먼북을 선택하여, 그 휴먼북과 마주 앉아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경험을 읽습니다.

 

꼭 알아야 할 ‘요즘 것들’ 이야기 

여기서 말하는 ‘요즘 것들’은 ‘MZ세대’를 뜻합니다. 기준 연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합니다만, 보통 M세대는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로, 정보기술(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게 특징입니다. Z세대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출생한 세대로,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디지털 원주민)’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50+자원봉사단 온라인 진로사람책’ 활동과 관련하여 알아야 할 ‘요즘 것들’은 MZ세대가 아니라 그 이후에 출생한 ‘미지의(?)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MZ세대의 막둥이가 어느새 스무 살이 훌쩍 넘었으니 말입니다.

 

딱히 부를 말이 없어 ‘미지의(?) 세대’라고 이름 붙인 MZ세대 이후의 요즘 것들은 정말 신묘(神妙)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이를테면, 마기꾼(마스크를 썼을 때와 벗었을 때의 외모 차이가 사기 수준이라는 뜻의 신조어)이라는 놀림을 당할까 봐 마스크를 벗지 않고 심지어는 급식도 먹지 않는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니 16명 중 15명이 “아니오!”라고 대답했답니다. 

 

나 같거나 비슷한 ‘꼰대’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당연한듯합니다. 그러니 ‘미지의(?) 세대’와 뭔가를 같이 도모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입니다. 하자니 할 수 없고, 안 하자니 해야 하고…. 그래서 또 불면의 밤이 이어지고…. ‘책사람’이 되어 또 어딘가를 마구 헤매고….

 

나만의 진로사람책 작성하기 4단계

‘사람책’과 ‘요즘 것들’에 이어 ‘멘토링 사전 준비’와 ‘멘토링 당일 진행 Tip’을 공부하고 나서, ‘내가 진로사람책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나요?’를 고민 겸 실습하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교육에 참석한 ‘사람책들’은 ‘내가 진로사람책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라며, 열렬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실습’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랬는데 강혜자 국장은 그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과연 명강사십니다!). 고민과 실습은 각자 집에서 하기로 하고, ‘나만의 진로사람책 작성하기 4단계’를 짜임새 있게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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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진로사람책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나요? 제목과 목차와 키워드를 적어보세요.

 

Step 01 : 내 삶을 들여다본 후, 나누고 싶은 경험이나 지혜를 정해보세요.

Step 02 : 선택한 경험과 지혜를 통해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 주제를 정해보세요.

Step 03 : 사람책 목차를 정한 후 내용을 써보세요.

Step 04 : 매력적인 제목을 만들어보세요. 

집에 와서 엄청나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실습도 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여 년 전인데, 나 때는 말이야….” 이렇게 시작하려다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꼰대지수’가 허용기준치를 심하게 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Step 01-02 :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 뭘까요? 나는 “~할 수도 있었어요”라는 말이 가장 슬픕니다. 열심히 공부할 수도 있었어요. 엄마와 아빠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어요. 그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도 있었어요. 시인이 될 수도 있었어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될 수도 있었어요. 

그랬는데 어떻게 했나요? 그러지 않았지요?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아서 후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서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후회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어요.

10년간 책을 읽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드디어, 진로사람책이 되어 멘토링을 하는 그날이 되었습니다. 2022년 9월 19일 오후 4시입니다. 줌에서 세 사람이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이번 프로그램에서 멘티를 담당할 여고생, 한 사람은 진행을 담당할 팀장, 한 사람은 멘토를 담당할 ‘진로사람책’입니다. 원래는 3명의 여고생 멘티가 참여하기로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두 명이 빠지는 바람에 무척 섭섭했습니다. 

초면이니까 당연히 조금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이 ‘미지의 세대’인데다가 ‘여고생’이기까지 해서 저절로 조심스러웠습니다. 

 

멘티가 귀담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미리 준비해둔 이야기로 멘토링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으니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하라고 간곡히 말했습니다. 할 수 있는 공부도 지금, 사랑도 지금, 건강도 지금 하라고 말이지요. 줌을 사이에 두고 말하고 들으려니 서로가 서로에게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진심(眞心)은 통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어서 멘티가 궁금해하는 홍보, 마케팅, 홍보마케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멘티의 질문은 세 가지였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대답해 주었는데 궁금증이 풀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홍보마케터에게 필요한 자격증은 뭔가요?

- 홍보마케터 2급, 1급, 이런 자격증이 있나요? 그런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자격증보다 더 중요한 게 홍보마케터로서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해요. 태도는 자기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성실하게 해나가는 것, 일하는 데 필요한 역량과 능력과 자질을 꾸준히 성장시켜나가는 것을 말해요.

 

홍보마케팅에서 중요한 일은 뭔가요? 

-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거짓말은 언젠가 반드시 들통나게 되어 있답니다.

 

마케터가 되기 위해 고등학생 때 하면 좋은 활동은 뭔가요? 

-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가장 중요한 무기는 읽고, 쓰고, 말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읽는 것은 인풋(In-put)이고, 쓰고 말하는 것은 아웃풋(Out-put)인데,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이 있을 수 없어요. 

“10년간 책을 읽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성장하지 못하고, 자기 의견이 사라지고, 충만함 대신 뻔한 삶을 살게 되고, 말주변이 없어지고, 생각하는 힘이 약해져 엉뚱한 결정을 하고, 인생에서의 큰 즐거움을 잃게 될 것이다.” 한근태 선생님이 쓴 『고수의 독서법을 말하다』라는 책에 나오는 질문과 대답입니다. 이 책,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해요.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끝내기로 약속된 시간이 되었고,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었고, 줌에서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 느닷없이 초저녁에 잠이 쏟아졌고, 꿈에 나타나던 ‘책사람’도 사라졌습니다. 그랬는데도 왠지 오랫동안 시원섭섭했습니다. 더 잘할 걸…, 싶어서 그랬을 겁니다. 나의 멘티가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정성을 다해 소망합니다.

 

에필로그; 멀기도 하여라, 제주도 가는 길

언젠가 마누라가 장가계를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다녀와서는 풍경이 이렇고 음식이 저렇다고 수다를 떨던 중에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를 했는데, 마음이 짠했습니다. 어느 노부부가 자녀들이 보내준 효도 여행을 왔더랍니다. 그런데 그 많은 여행지 중에 하필이면 ‘장가계’이고, 하필이면 나이 들어 팔다리가 떨리는 지금일까요?

 

그 노부부는 여행지를 옮길 때마다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좋은 구경하러 나서는 일행들에게 그저 손을 흔들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했답니다. 너무 힘들어서 구경이니 뭐니 다 필요 없고 그저 쉬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아서 후회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여행도 그렇습니다. 팔다리 떨릴 때가 아니라 가슴 떨릴 때가 바로 여행 갈 때입니다. 그래서 ‘여행 갈 결심’을 했습니다. 50+시민기자로서 열심히 기사를 쓰고, 그 원고료를 모아서 제주도에 가겠노라고. 제주도 가는 비행기 편도 요금이 얼추 9만 얼마니까 이 기사를 제대로 마무리하면 목포 어디쯤까지는 갈 수 있겠군요. 아, 멀기도 하여라, 제주도 가는 길.

 

 

50+시민기자단 이경걸 기자 (khwappl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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