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웨이를 함께 걸으려는 사람들과 행복한 동행을 꿈꾸며

사람은 왜 배우려고 할까? 언제까지 배워야 할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배우는 게 좋을까? 이런 배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오히려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서야 생기기 시작했다. 넘치는 교육열로 밤낮 시달리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뻣뻣하게 굳어버린 지식을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어른들을 대하면서, 풀긴 풀어야 하는데 딱히 정답을 알 수 없는 인생 숙제를 만나면서 나는 매번 배움에 대한 갈증과 의문들로 괴로웠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것이 ‘지혜로운학교-U3A서울’이다. 

 

김정은
50+단체지원사업: 엄마학교협동조합

 

 

1. 살면서 생긴 의문

 

아이들에게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교육비를 지불하면서 정작 자기를 위한 투자에는 늘 머뭇대는 것이 이 땅의 어쩔 수 없는 부모들이다. 그런 어른끼리 각자의 사회 경험과 전문 지식을 품앗이처럼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평생교육 단체를 만든다니 귀가 솔깃했다. 도와보자는 생각에 운영위원으로 합류했다. 그 당시 나는 딱히 배우고 싶은 것은 없으나 이렇게만 살아가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답답해서 앞으로 다가올 '엄마 너머의 삶'을 준비하던 50 즈음이었다.

 

2. 지혜로운학교를 만나다

 

초기에는 블로그 원년 멤버 경력으로 지혜로운학교 카페(웹사이트) 관리만 열중했다. 그러다 다양한 강좌 구성을 위해 운영위원들도 나서기로 했다. 각자 진행할 수 있는 분야를 맡아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아이들은 몰라도 내가 어른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영 자신이 없었다. 다들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이고 교육계에 있었던 분도 많아서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오래된 소신이 조금쯤은 용기를 줬다. 실제로 지혜로운학교는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나누어지지 않는 학습공동체로 운영되기 때문에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강좌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학기마다 '힐링 토크', 'SNS 힐링 글쓰기', '1인 미디어. 블로그로 입문하라', '지혜로운 기자교실'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관련 강좌를 번갈아가며 열었다. 몇 년 동안 때로는 학생이 되고 때로는 강사 노릇을 하면서 그렇게 자기계발의 폭을 넓혀 갔다.

 

3. 작당 모의를 시작하다

 

시간이 흐르며 지혜로운학교 안에서 성향이 비슷하고 결이 맞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과 꾸준한 만남을 이어가려면 좀 더 인간적으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핑계가 필요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시기에 눈에 띈 것이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줄리아 카메론이라는 작가가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이라는 부제로 자기다움을 북돋우고 발현할 수 있도록 고안해놓은 자기계발서다. 전 세계에 400만부 이상이 팔렸을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도 각광을 받고 있었다. 주위에서 이 책을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는 지인들을 보았다. 호기심이 일었다. 읽어보니 이 책을 기본으로 이야기 모임을 이어가면 딱 좋을 듯 했다.

 

기술과 지식은 필요할 때마다 단편적으로 배우면서 축적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현명하게 살기 위한 삶의 방향성에 관한 결정은 자신과의 깊은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책은 그런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면서 그 과정 안에서 자기다움을 회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지침서였다. 혼자서 12주를 진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질 않을 것 같았다. 각자 자기 일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과 했던 약속은 늘 저만치 떠밀려가기 일쑤니까.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혜로운학교에서 알게 된 분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누며 진도를 나가보면 좋을 것 같았다. 자기 대화도 필요하지만 비슷한 여정을 걷는 도반들과 만나 생각과 체험을 공유하는 것도 큰 힘이 되는 법이니까.

 

4. 커뮤니티 : 아티스트웨이 연구회

 

이런 모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매우 귀한 기회다. 원래 잘 알고 지내는 지인과는 모이기는 쉬워도 공부 자체에 몰입하기 어렵다. 편해지다 보면 개인 사정에 따라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많다. 관계에 집중해 외부 사람의 유입을 꺼리면 폐쇄적인 집단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배움 공동체로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그러다보니 이 기회를 잘 살려보고 싶었다. 욕심을 냈다. 아예 '아티스트웨이 연구회'라는 이름을 붙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열려있는 모임으로 발전시키면 어떨까. 우선은 우리끼리 12주 동안 각자 아티스트웨이를 한 챕터씩 하면서 만나기로 했다. 강사라는 자리를 벗어놓고 시작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당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보람일자리 사업으로 모더레이터 활동을 병행하고 있던 나는 서부캠퍼스로 드나들며 커뮤니티 지원 사업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아티스트웨이 연구회'를 좀 더 탄탄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신청서를 접수하기로 했다. 어차피 진행하는 일이니 탄력을 받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뭐라도 한번 시작하면 생각지도 못한 일거리가 거침없이 밀려든다. 작은 보조금을 지원해준다기에 좋아했더니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예상보다 많았다. 커뮤니티의 결성 계기에서부터 향후 계획까지 꼼꼼하게 작성해서 내라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결산보고를 위한 증빙서류도 필요하단다. 세상 만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후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약속을 했으니 내야 할 서류를 하나하나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막연했던 모임 구상이 점점 선명해지면서 방향성도 조금씩 잡혀가는 게 아닌가. 보고서에 쓸 거리를 위해서도 혼자 생각해본 일을 하나씩 시도해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 과정이 없었더라면 그 모임은 12주만 겨우 마치고 영원히 끝나버렸을 지도 모른다.

 

서부캠퍼스 담당자들과 커뮤니티 지원팀에게는 미안한 일도 많이 있었다. 내게 익숙지 않은 일이라서 서툴렀던 업무들을 불필요한 귀찮은 일이라고 자주 투덜거렸다. 그런 투정에도 웃는 낯빛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도록 제안하고 독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한다. 그로 말미암아 피티데이에도 나갔고, 성과발표회도 준비하고, 커뮤니티 콘테스트까지 참여해 우수상까지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5. 연구회에서 잉태된 엄마학교협동조합

 

아티스트웨이 연구회 2기생들은 우연치 않게 엄마를 테마로 묶어볼 만한 팀이었다. 엄마난중일기를 쓴 나, 엄마독립만세를 쓴 박정옥씨, 책아이책엄마 커뮤니티 대표 한현정씨, 아이들을 외국에 떠나보내고 홀로서기에 매진하던 이애란씨, 육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던 김조영씨가 함께 아티스트웨이를 공부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엄마들의 현주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 매주 만나는 일이 열 두 번이나 계속되다 보니 엄마들을 위한 단체를 만들어보자는 의기투합에 이르렀다.

 

스스로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엄마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거다. 그렇게 '엄마학교협동조합'이라는 단체가 아티스트웨이를 공부하는 동안 잉태되었다. 처음 생각보다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배우면서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시작했는데 어느덧 커뮤니티 를 넘어 협동조합까지 조직하게 될 줄이야.

 

이후 일 년은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사업자등록까지 마치는 단체설립 지원사업까지 지원하게 되었으니 온전히 아티스트웨이 연구회에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든 하루빨리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대표로서의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야 조금씩 중심을 찾아가고 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함께 하는 일은 급하게 생각할수록 잃을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여유롭게 초심을 유지하며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었다. 되도록 지출되는 고정비용을 줄이고 기본 취지에 맞는 일들을 연구해낼 때까지 길게 보기로 했다.

 

 

6. 커뮤니티 실험의 발전과 도약

 

'아티스트웨이 연구회'는 그 이름만큼이나 교육 실험공동체로서 역할을 했다.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는 바쁜 중에도 꾸준히 공부모임을 다시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다섯 순번을 돌았으니 워크숍만 60번을 넘게 진행한 셈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책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워크북을 만들어냈다. 연구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이 다시 자기만의 공부 모임을 운영할 때 부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2017년 더함플러스 협동조합과 함께 '따로 또 같이'라는 관계성장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이 아티스트웨이 기본구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시도했던 다양한 실험들은 이제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연구원 홈커밍데이나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만든 '아티스트웨이 브런치''아티스트웨이 나이트'는 엄마학교협동조합 회원들을 위한 '소셜다이닝 이야기파티'로 발전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벌써 8회 차에 이르고 있다. 과정 마무리로 함께 떠났던 '아티스트웨이 여행'201850+단체 공익사업으로 선정되었던 '2050 소통여행'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공부하며 만든 '아티스트웨이 작품집'은 자기스토리를 위한 독립출판 공부모임에서 훌륭한 소책자 견본으로 한 몫 하고 있다.

 

, 지난여름 중부캠퍼스에는 '나와 함께 하는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이름으로 아티스트웨이 입문과정을 개설했다. 자신에 대한 표현과 대화가 부족한 사람들, 다른 사람 기준에 흔들리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자기 회복이 필요한 엄마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 엄마학교협동조합의 기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보려고 구상중이다. 지금도 신청자가 있을 때마다 소규모 그룹을 모집해 진행하고 있다.

 

7. 미래로 향하는 꿈

 

꿈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또다시 날개를 단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 '아티스트웨이 연구회'가 좀 더 확대되고 정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12(100)간의 자기 대화 과정을 좀 더 다져서 프로그램 운영을 하고 싶다. 이를 통하여 정체성을 회복하고 독창적인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또 다른 모임을 만들면서 그 기본정신을 확산해가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활동하는 사람들끼리는 가끔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합동 축제를 여는 것이 어떨까.

 

혼자 꾸는 꿈은 힘이 약하다. 하나의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기까지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은 아티스트웨이 12주 과정을 전파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뜻이 맞아 동행하는 사람들이 생기면 또 다시 큰 변화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자유로운 아티스트처럼 현재를 음미하며 살고 있다.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기회가 왔을 때마다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