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몇 년 전 인터넷을 달궜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기억하시는지. 당시에 그 글을 게시판에 올려서 화제가 되었던 김민섭님을 모시고 서부캠퍼스 하반기 <50+의 시간>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민섭 님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라는 책을 내게 된 것을 계기로 대학에서 나오게 되었고, 대리운전을 하며 바라본 사회의 모습을 그린 <대리사회>,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마을 이야기<아무튼 망원동>, 만화로 ‘오늘’을 읽어 낸 <고백, 손짓, 연결> 등의 책을 내고 본격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아내 되시는 분에게 프로포즈를 하며 두 가지 질문을 했다는데 내용인즉슨
 
 
이 웃지도 못할 어이없는 상황은 4대 보험은 물론이고 10년을 일하고도 재직증명서도 뗄 수 없는 ‘시간강사’라는 직업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노동은 하고 있지만 증명은 불가능하고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유령 같은 삶으로 허공을 걷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아이가 태어난 뒤 연구시간과 강의 준비시간을 줄이며 선택한 일은 ‘4대 보험, 월수입 50만원 보장’ 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맥도날드 상하차 아르바이트. 어째서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일까? 나는 학생인가? 노동자인가? 사회인인가?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계속되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 것 같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A4 2페이지의 글로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게 되자 몇 시간 만에 8만 명의 사람들이 읽고 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다. 질문에 대한 성찰과 대답은 그 뒤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책이 나온 뒤 저자는 대학을 떠나게 되는데 첫째는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을’들의 질타, 일부 동료나 선배들의 반응 때문이었고 둘째는 지식을 생산하는 공간은 대학 밖에 없다는 생각에 균열이 생기면서였다 한다.
 
 
 
김민섭 작가는 일을 그만 두고 글을 쓰기 위해 출입하기 시작한 스터디 카페에서 만난 청춘들이 ‘공무원 수험서’를 옆에 끼고 스톱워치를 눌러가며 문제 푸는 모습을 보고 나만 불쌍한 줄 알았는데 난 그나마 팔자 좋은 거구나 생각했다 한다. 그는 밖에서 관계를 맺고 일을 하면서 몸에 쌓이는 것이 있어야 매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카카오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다. 그는 그 일을 통해서 배우는 게 있다면 책을 써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차주와 대리기사와의 관계에서 나온 이 호칭은 관계의 위계질서를 정하고 이미 관계를 정상적으로 시작될 수 없도록 경험을 하게 하면서 호칭이 소통에 있어 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타인의 운전석은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없는 자리이자 몸의 통제, 말의 통제, 생각의 통제를 겪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현상을 보거나 말을 듣고도 비판하지 않고 동의하는 척 하는 기술은 일반 회사나 조직에서도 같은 맥락을 보여준다. 의심하지 않고 수행한다. 그러면 성과급이 나오고 인정받는다. 설사 그 결과가 누군가를 불행하게 하더라도 말이다.
 
 
사회는 거대한 운전석이며, 우리는 이미 “네. 맞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라는 말들을 사용하고 있다. ‘을’이었던 모든 자리에서 말이다. 대리 인간이 절대 할 수 없는 것은 '질문'이다. 소통에 있어 대답, 동의, 칭찬만 바라는 사람은 상대를 대리인간으로 만든다. 대리 인간의 삶은 몸과 언어를 통제 당하지만, '생각하는 것' 만큼은 나의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동의와 칭찬 일색인 얘기를 듣고 있다면 타인의 삶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당신을 ‘을’로 만들고 있진 않은가? 나는 괜찮은가? 이것이 바로 서로 간의 소통으로 나아가는 길이고 사회적 우정이다. 나는 괜찮은가? 너는? 우리는 괜찮은가? 우리 사회는 괜찮은가? 김민섭 작가는 다음 물음표를 찾아가는 중이고 그 길에서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강의 부록으로 곁들인 비행기 티켓 관련 에피소드는 감동적이었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 아이의 수술로 좌초되고 후쿠오카행 비행기 티켓 환불시 10%밖에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작가는 ‘김민섭’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페이스 북으로 찾아 그에게 여행 티켓을 조건 없이 양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동화 같은 일들을 이야기했다. (우왓…… 이게 말이 돼?)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가난한 휴학생 김민섭(영문 스펠링까지 같은)씨가 연락을 해오고 그에게 숙박비, 버스패스, 관광지 입장권 등이 쇄도하면서 결국 졸업 전시비용까지 모아주는 ‘청년 미래응원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93년생 김민섭씨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

김민섭 작가가 들려준 김민섭 학생과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잘되면 돌고 돌아 나도, 우리도 잘되지 않을까요? 사회적 우정을 회복하는 50+의 시간이었습니다. 

 


글_임영라(50+모더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