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캠퍼스에서는 비대면 학습 환경의 변화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캠퍼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50+세대에게

음악, 영화, 미술 분야 명사들의 수준 높은 인문학 강연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접하기 어려웠던 문화예술을 통해 사색과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3편의 문화예술특강을 마련하였습니다.

 

[음악] 전염병과 클래식 음악의 역사 : 조은아 교수
[영화] 영화로 들여다보는 호모루덴스 : 유지나 영화평론가
[미술] 사색과 치유의 공간, 미술관 여행 : 안현배 작가

 

유튜브라이브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공감과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며

인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을 주었던 특강 이야기를 후기를 통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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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질병이 가져온 두려움의 물결을 어떻게 타고 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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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교수, 전염병과 클래식 음악의 역사

 

 

 

음악 이야기는 조은아 교수의 피아노 연주(Billy Joel의 ‘Reverie’)로 시작된다. 제목 그대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사색과 묵상하기를 권하는 듯하다. 

 

음악은 대규모 전염병에 어떻게 저항하고 직면하며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견뎌냈을까. 질병과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통 크게 놀았던 음악은 없었을까. 음악가 본인의 투병 과정은 음악에 어떻게 담겼을까. 가까운 이의 죽음을 목도하며 느꼈던 분노와 슬픔은 음악에 어떻게 스며들었을까. 코로나는 음악의 장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조 교수가 던진 음악의 화두들이다.

 

음악은 전염병이 가져오는 오랜 기간의 격리, 죽음의 공포, 신체적 고통을 견디는 ‘문화의 생명줄’이었음을 역사는 알려준다. 흑사병, 스페인 독감, 에이즈 등을 헤쳐 나왔고 지금 코로나를 통과 중인 인류는 음악을 통해 구원의 열망을 담아내기도 하고 치유와 회복의 염원을 노래하며 사람들 간의 유대를 엮어낸다.

 

중세 흑사병의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해달라는 신을 향한 기원은 John Cooke의 <천국의 별(Stella Celi)>에 담기고, 흑사병은 어두운 감정과 슬픔이 원인이라며 ‘즐거운 생각으로 우울함을 피하며 마음을 지키기 위해’ 음악이라는 ‘행운의 치료법’을 써야 함을 강조한 Guillaume de Machaut의 <애가>로 나타난다.

흑사병의 창궐은 아이들 동요 속에도 반영되어 영국에서는 Ring around the rosie가 아이들 사이에 춤과 노래로 불리며 질병의 무거움을 발랄한 멜로디로 날려버리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 아이들이 어릴 적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며  고무줄 춤을 추어 어른들의 전쟁의 아픈 기억을 노래로 흘려버리듯이. 

 

 

 

 

Bach의 Cantata는 ‘당신의 노여움으로 제 살은 성한 데가 없고, 저희 죄로 제 뼈는 온전한 데 없습니다.’고 노래하며 고통 받는 이의 절박함과 슬픔을 노래하며 전능하신 신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다. 또 종교 박해를 견디며 격리의 고통을 음악으로 견딘 William Byrd는 라틴어 미사곡 Miserere mei을 부르며 봉쇄와 감금보다 더 좋은 창작의 산실이 없음을 알린다.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리며 떠들썩한 춤곡으로 전염병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밤 중 해골들의 춤으로 죽음의 공포를 희화한 Saint Saens <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 이는 Henderson의 현대판 애니메이션으로도 영상화 되었다. 한편 Listz <죽음의 무도 Toten tanz>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최후의 심판의 날을 노래한다.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 유행은 지금 코로나 상황처럼 공연장이 폐쇄되며 공연은 취소되었다. 본인들이 직접 감염되었던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시마노프스키 등은 연주회가 좌절되며 경제적인 고통도 이겨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Bela Bartok은 본인의 투병 경험을 스토리가 기괴한 <The Miraculous Mandarin>에 담았다. 친지들의 죽음을 목도한 Darius Milhaud는 <전염병 희생자를 위한 개인적 헌사>를, 90년대 John Corigliano도 <AIDS Symphony> 2악장 Tarantella를 작곡하여 전염병에 대한 작곡가의 분노를 담았다. 

 

 

 

 

코로나 시대의 음악으로는 어떤 새로운 음악이 나타날까? 그 시험적인 시도가 금년 5월 Bam Berg Symphony : <Reflections of Hope : A symphonic answer to the Corona pandemic>로 나타났다. 86명의 단원들이 각자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연주 모습을 전송하고 이를 합성해 디지털 연주회를 가졌다. 공간 격리를 넘어 함께 연주하기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비말 감염이 확산됨을 상징이라도 하듯 crescendo로 연주의 세기를 높여갔고 연주 후 단원들은 각자 자신의 모국어로 코로나와 관련된 단어들 ‘질병, 감금, 백신, 인공호흡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외쳐 코로나에 대한 교향악적 답변을 내놓았다. 
마지막 장면은 푸른 지구를 보여주며, “(코로나)불꽃이 세계를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세상을 다시 밝힐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건네며 그래도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도 없고 온라인 연주회이기에 비디오와 오디오 아티스트나 프로듀서의 역할이 중시되며 ending credit에 이들의 이름이 마치 영화감독의 이름 자리에 오르고 있는 모습은 변화될 세상을 알리는 신호로 다가온다. 

 

조은아 교수는 음악의 가장 큰 힘은 경청 능력이며 청각은 여러 결의 소리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길이며 악기의 음색과 음악의 서사구조를 알아가는 중요한 능력으로 본다. 또한 음악 감상의 조건으로 집중, 침묵, 쉼표의 여백을 들며 청각의 고요한 상태 유지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코로나가 던지는 인간 존재와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를 당황케 하지만 삶의 자리를 다시 되짚어보라는 메시지다.

코로나는 질병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 시점의 변환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익숙했던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되먹임을 요구한다.

‘거리두기’를 새로운 삶의 원리로 발명해야 하는 지금,

끈적이는 인간의 “욕망과의 거리두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익숙했던 길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길은 끊어져 있고

아직 새 길은 놓이지 않은 사이 예술도 놓일 자리를 새로 잡는다.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연주회, 전시회, 혼영(혼자 보는 영화)은 예술의 존재 방식을 되묻고 있다.

예술은 지금까지 인간들이 연결되어왔던 세계를 앞으로 어떻게 새로 연결할 것인지

뒤로 물러나 방향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예술은 억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그 의미와 상태를 통찰하는 눈을 얻어

다른 곳에 가 닿으려는 힘을 건넨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학습지원단

조윤성